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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초 샤이니 멤버 종현의 솔로 미니앨범 [Base]로 시작하여 현재까지 그와 관계된 음악적 결과물을 정리해보자. 우선 샤이니의 네 번째 앨범과 리패키지가 있었다. 가을에는 MBC 라디오 [푸른밤 종현입니다]의 프로젝트 코너에서 만든 자작곡을 모은 [이야기 Op.1]이 나왔다. 연이어 Mnet [라이브커넥션]에서 만든 노래들이 등장했다. 해를 바꿔 지난 3월에는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음원 프로젝트인 ‘STATION’의 일환으로 헤리티지와 함께한 ‘한마디(Your Voice)’를 발표했다. 그리고 5월에는 첫 정규앨범 [좋아]가 나왔다. 동시에 그는 매일 방송되는 라디오 DJ이면서, 당연히 그 외의 공연과 해외활동을 병행한다. 종현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인기 아이돌이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의 생산성은 충분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종현은 정규앨범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음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계속 높여나가는 중이다. 그는 샤이니 내부를 중심으로 꾸준히 가사 작업에 참여해왔고, 아이유와 손담비 같은 소속사 외부의 아티스트와 작업하며 자신의 곡을 선보였다. 일종의 1차 결과물과 같았던 [Base]는 콘셉트와 캐릭터를 바탕으로 하는 아이돌 문법과 매끈하게 완성된 최신 트렌드의 음악을 결합했고, 그 두 가지의 완성도가 모두 담보되었다는 측면에서 SM, 샤이니, 그리고 종현에게만 가능한 무엇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여기에 [이야기 Op.1]을 거치면서 송라이터로서의 위치는 공고히 했다. 그리고 [좋아]는 여기에 이르는 모든 이야기의 총합처럼 보인다. [Base]의 어두움과 달리 네온 컬러가 폭발하면서도, 모든 미덕을 유지한다.



그런데 여기부터 종현을 따로 주목할 이유가 생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스로 앨범에 대해 밝힌 바와 같이, 미니앨범 [Base]가 방향성이라면 정규앨범 [좋아]는 스토리텔링이다. 그는 하나의 캐릭터가 일관성을 가지고 앨범 전체를 관통하기를 원했고, 그 과정에서 각 트랙의 장르와 스타일에 따라 적합한 이들과 협업했다. 아이돌의 훈장처럼 여겨지는 공헌도가 아니라 최종 결과물이 잘 나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다행스럽게도 그 고민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자원을 누렸다. 그래서 한 트랙 정도는 회사가 자신을 두고 생각하는 바를 알아보고 싶어서 전적으로 맡겼다는 발언[각주:1]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개인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현하는 회사도.


요컨대 [좋아]에는 아이돌 솔로 앨범 발매에 관한 보도자료나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없다. 대중은 타고난 재능과 매력에 감탄할 수 있다. 그것이 연습과 훈련과 노력으로 갈고 닦아져 기예의 수준에 이르렀을 때 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돌 산업의 어느 한구석에서, 창작자로서의 성실함과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결과물에 대한 고민을 모두 갖춘 이를 만나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심지어 그가 자신이 속한 시스템에서 활용 가능한 부분을 영리하게 다룰 줄 안다면, 반복이나 종합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SM, 샤이니, 그리고 종현에게만 가능한 무엇을 계속 기대해도 될 것이다.


ⓒize: 글 서성덕(음악평론가), 교정 김영진

  1. 김신영 “한 곡은 작곡을.”
    종현 “참여를 안 했어요, 그 곡만.”
    김신영 “참여를 안 했어요. 왜, 왜?”
    종현 “사실 그 곡을 고를 때 자체에서 ‘이 곡은 저는 아예 참여를 안 할게요’라는 얘기를 했었어요. 한 곡은, 회사의 방향성이라든지 나를 두고 상상하는 캐릭터도 궁금하기도 해서. 회사의 생각도 음악적으로 알아보고 싶어서 한번 ‘그쪽은 전적으로 맡겨보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했었었는데, 작사 쪽으로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저는 나중에 참여를 하게 됐어요. 녹음을 진행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눠 보다가.”
    2016년 5월 26일 정오의 희망곡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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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에게 솔로 앨범과 싱어송라이터는 일종의 훈장 같은 것이었다. 솔로 앨범은 그 자신이 인기 아이돌이라는 증거고, 자작곡은 음악적 역량을 증명할 기회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의 자작곡으로 채운 솔로 앨범이란 하나의 터닝 포인트고, 음악적 변화와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각자 솔로 앨범을 낸 샤이니의 종현과 CNBLUE의 정용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예다. 그들은 자신의 작곡으로 채운 솔로 앨범들을 그저 거쳐 가야 하는 통과 의례의 수준으로 꾸미지 않았다. 두 장의 앨범에는 아이돌이자 싱어송라이터로서 두 사람의 독립된 개성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예상 이상의 결과물이었을 두 사람의 솔로 앨범을 대중음악평론가 서성덕, 김영대가 각각 평했다.



종현, 아이돌 문법의 음악적 BASE

그룹 샤이니 종현의 솔로 데뷔 앨범 [BASE]는 동료 태민의 솔로 [ACE]의 짝패처럼 보인다. 정확히는 태민이 ‘아이돌 문법의 ACE’를 보여줬다면, 종현은 ‘그 아래의 음악적 BASE’를 증명한다. 지난해 소녀시대, EXO, 그리고 태민이 정점을 찍으며 보여준 것처럼,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은 캐릭터, 음악, 퍼포먼스를 하나로 엮어내는 콘셉트 기반의 기획력에 서구에서 들어도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완성도와 현지성을 결합한 음악들로 아시아 바깥의 시장에서도 팬층을 만들었다. 


반면 종현의 곡들은 바로 지금 한국의 음악적 트렌드를 담고 있다. 활동의 중심이 되는 ‘데자-부’와 ‘Crazy’는 선언적이다. 자이언티와 아이언의 참여가 눈에 띄는 두 노래는 아메바컬쳐 등 한국의 흑인음악 중심 레이블에서 나왔다 해도 어색하지 않다. 심지어 ‘할렐루야’에 잠깐 나오는 부분을 제외하면 SM 아이돌 특유의 ‘지르는 열창’도 없다. 지금 한국 거리에서 기분 좋게, 리듬 타며 들을 수 있는 노래. 선공개된 ‘데자-부’는 발표와 함께 음원차트를 ‘올킬’했고, 다른 곡들도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SM의 열광적인 인기에 비해 음원차트에 약했다는 평에 대해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거”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솜씨다. 


그러나 SM의 진짜 ‘BASE’는 따로 있다. 거리에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이 음악들에, SM은 특유의 티저, 뮤직비디오 등 그들의 방식을 덧입힌다. 뮤직비디오에서 종현이라는 개인의 매력과 노래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시도는 스토리텔링 같은 쉬운 방법 대신 상의탈의와 쇠사슬처럼 과감하다. 메이크업과 소품, 조명 등으로 강렬하게 만들어내는 종현의 모습은 SM이 뮤직비디오 속에서 구현하곤 하는 가상의 캐릭터다. 이 묘한 조합은 ‘간극’보다 ‘결합’에 방점이 찍힌다. SM의 다른 아이돌처럼 종현은 강렬한 캐릭터를 가진 채 밴드와 함께 요즘 한국 스타일의 소울이라고 할만한 ‘Crazy’를 부른다. 


[BASE]에서 SM, 또는 아이돌은 더 이상 한국 대중음악에서 별개의 장르나 산업이 아니다. 대신 과거와 현재의 한국 음악들을 그 시스템 안에서 포섭하고자 한다. 그 사이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 종현의 보컬인 이유다. 그가 다양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것은 단지 솔로로서 노래를 모두 책임지는 역량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에서 종현이 보여주는 표정과 동작과 결합하면, 그의 목소리는 일종의 연기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만들어낸 일관된 분위기의 공간 안에서, 한 명의 캐릭터로 노래를 소화한다. 종현의 성취는 단지 아이돌이 작곡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금 소화하는 스타일에 아이돌로서 자기만의 색을 입혔다는 데 있다. 한국의 트렌디한 스타일의 음악이, 트렌드를 유지하면서 SM 스타일과 결합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규현이 ‘광화문에서’를 통하여 1990년대 발라드를 소화하는 아이돌로서 예시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앨범 발매시 알려졌던 이수만 회장의 “규현을 SM의 이광조로 만든다”는 발언은 그냥 재미있는 말 이상이다. 그 점에서 종현의 진짜 짝패는 규현일지도 모르겠다.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기획 시스템, 그룹에 비해 다소 부담이 덜한 솔로라는 활동 양상, 그리고 나름의 식견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 개별 아티스트들의 음악적인 도전이 만난 결과물은 의외로 인상적이다. 대기업이 굳이 맥주집을 차렸는데, 제대로 된 크래프트 맥주가 나와서 딱히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 될까? 


ⓒize: 글 서성덕(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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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의 ‘Everybody’는 장난감 병정이 콘셉트다. 잠들어 있던 장난감 병정들이 깨어나 춤을 추고, 춤이 끝나면 다시 쓰러져 잠든다. 딱 사람이 태엽을 감은 만큼, 원하는 만큼 움직이고 정지하는 장난감들. 하지만 <토이 스토리>는 우리에게 인간이 볼 수 없는 장난감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줬다.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꽤 힘든 노동이고, 서로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샤이니의 김종현이 얼마 전 트위터에 남긴 글처럼. “아그리고 님들하 미노가 나호빗이라고놀려씀 ㅜㅜㅜㅜㅜㅜㅜㅜ 나 데뷔때보다 일센치나컷는데ㅜㅜㅜㅜㅜㅜ”


SNS를 활용하는 아이돌은 많다. 유머감각을 발휘하는 아이돌도, 세상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아이돌도 몇몇 있다. 하지만 김종현처럼 때론 조증과 울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갈 만큼 감정 표현의 폭이 큰 경우는 많지 않다. 멜론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뒤 자신이 우는 사진을 올리고 “미안해요 부족한 내가 이렇게 큰 보답을 받아도 되는지 떨리고 무서워요 어떤 모습을 보여도 지지해주는 당신 때문에”라고 하는 한편, 영화 <관상>을 보고 나서는 “룰루랄라 집에서 관상보는데 너무재미땅 맹꽁이서당이 계속 생각나는 영화군!” 같은 글을 올린다. 당연하다. 스물셋 청년이니까. 하지만 당연하지 않다. 스물셋 아이돌이니까. 김종현은 KBS <불후의 명곡>에서 패닉의 ‘왼손잡이’를 “나는 양손잡이야!”라고 개사한 무대를 선보였다. 약간은 이성을 잃은 듯 질러버린 그 무대가 끝난 뒤, 인터넷에는 공연의 특정 부분만 잘라내 그를 조롱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인디 뮤지션이라면 팬들끼리 공유하고 끝날 재밌는 이벤트가, 아이돌에게는 그의 실력과 성격을 규정하는 근거가 돼버린다.



“한때란다 한때야 날카로운 감정의 기억이 무뎌진다 무뎌져 네모가 닳아져 원이 돼.” 김종현이 만들어 아이유에게 준 ‘우울시계’는 사랑에 관한 노래지만, 이 구절만큼은 아이돌이 만나는 세상에 관한 것처럼 느껴진다. 느낀 만큼 뾰족하게 표현하려고 하면, 세상은 둥글어지라고 말한다. 즐거워도 너무 크게 웃으면 안 되고, 슬퍼도 침착해야 한다. 장난감 병정처럼 대중이 원할 때만 움직이는 것이 좋은 직업. 그런데, 김종현은 뾰족하지도 둥글지도 않은 자신의 방법을 찾아나간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말이 세상을 휩쓸면서 한 성적 소수자가 자신의 안녕치 못한 처지를 대자보로 남겼고, 김종현은 그에게 “제 트윗으로 원치않는 주목을 받으시거나 이슈화로 피해 입으실까봐” DM으로 답했다. 자신은 “연예인으로서, 다른 의미로 대중을 대하는 소수자”로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많은 상실감”을 느끼고,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똑바로 외치시는 모습을 응원”한다고.


아이돌의 둥글지 않은 생각에 세상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 누군가는 그를 ‘개념’ 있다 칭찬했고, 누군가는 정치적이라며 비난한다. 이 일에서 파생된 극우 사이트 일베와 샤이니 몇몇 팬의 반응에 대해 ‘일베 VS 샤이니 월드’ 같은 헤드라인을 뽑아낸 매체도 있었다. 그러나 김종현의 글이 알려진 것은 상대방이 DM을 공개하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상대가 피해를 입을까 봐 DM을 보냈다. 상대가 공개를 원하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감수하고 허락했다. 자신의 뾰족함에 상대가 아파하지 않도록 하는 예의. 뾰족함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김종현의 정치적 입장이나 그가 프로필 사진으로 쓸 만큼 지지하는 대자보에 담긴 주장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익명의 인터넷에서는 무슨 말이든 배설하지만 ‘신상’이 공개되면 말 한마디 하기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청년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되, 예의 있게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돌은 DM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학생들은 절박한 처지를 공손한 말투에 담아 실명을 밝힌 대자보로 붙인다. 그러니, 김종현이나 ‘안녕들하십니까’를 쓴 청년들에게 무언가 한마디 하고 싶은 어른이 있다면 칭찬이나 비판 대신 미안해하길 바란다. 20대 청년이 140자의 입장, 거리의 대자보 한 장도 이렇게 신중하고 공손한 태도를 가져야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 미안함.


김종현의 행동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단지 자신의 뾰족한 뜻을 둥근 세상에 전달하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안녕들하십니까’가 당장 세상을 바꿔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살아갈 삶이다. ‘우울시계’는 쉴 새 없이 ‘우울하다 우울우울’을 반복하면서, 우울함의 감정에 오히려 위트를 불어넣는다. 김종현과 아이유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듯한 목소리로, 조금씩 리듬을 타며 작은 일상에서 느끼는 우울함들을 묘사한다. 그렇게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면서, 살짝 목소리를 높여 부르는 후렴구는 어딘가 처연하게 느껴진다. 우울함마저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넘겨버리면서 오히려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김종현이 작사한 샤이니의 ‘Dangerous’에는 ‘Trouble 소문들만 Double’, ‘넌 원형 없는 폭력들에 어둠 속에 숨어들어’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그는 어둠 속에 숨어드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잘 전달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 발표되는 손담비의 ‘Red Candle’을 만들면서 작곡가로서의 입지도 조금씩 넓혀간다. 무대 위의 장난감 병정 같던 아이돌이 무대 밖으로 내려와 천천히 자신의 음악들을 해나간다. 자신의 뾰족한 생각과 둥그런 방식을 지킨 채. 세상은 그렇게 또 조금 변해간다.


ⓒize: 글 강명석,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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