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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에게 솔로 앨범과 싱어송라이터는 일종의 훈장 같은 것이었다. 솔로 앨범은 그 자신이 인기 아이돌이라는 증거고, 자작곡은 음악적 역량을 증명할 기회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의 자작곡으로 채운 솔로 앨범이란 하나의 터닝 포인트고, 음악적 변화와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각자 솔로 앨범을 낸 샤이니의 종현과 CNBLUE의 정용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예다. 그들은 자신의 작곡으로 채운 솔로 앨범들을 그저 거쳐 가야 하는 통과 의례의 수준으로 꾸미지 않았다. 두 장의 앨범에는 아이돌이자 싱어송라이터로서 두 사람의 독립된 개성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예상 이상의 결과물이었을 두 사람의 솔로 앨범을 대중음악평론가 서성덕, 김영대가 각각 평했다.



종현, 아이돌 문법의 음악적 BASE

그룹 샤이니 종현의 솔로 데뷔 앨범 [BASE]는 동료 태민의 솔로 [ACE]의 짝패처럼 보인다. 정확히는 태민이 ‘아이돌 문법의 ACE’를 보여줬다면, 종현은 ‘그 아래의 음악적 BASE’를 증명한다. 지난해 소녀시대, EXO, 그리고 태민이 정점을 찍으며 보여준 것처럼,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은 캐릭터, 음악, 퍼포먼스를 하나로 엮어내는 콘셉트 기반의 기획력에 서구에서 들어도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완성도와 현지성을 결합한 음악들로 아시아 바깥의 시장에서도 팬층을 만들었다. 


반면 종현의 곡들은 바로 지금 한국의 음악적 트렌드를 담고 있다. 활동의 중심이 되는 ‘데자-부’와 ‘Crazy’는 선언적이다. 자이언티와 아이언의 참여가 눈에 띄는 두 노래는 아메바컬쳐 등 한국의 흑인음악 중심 레이블에서 나왔다 해도 어색하지 않다. 심지어 ‘할렐루야’에 잠깐 나오는 부분을 제외하면 SM 아이돌 특유의 ‘지르는 열창’도 없다. 지금 한국 거리에서 기분 좋게, 리듬 타며 들을 수 있는 노래. 선공개된 ‘데자-부’는 발표와 함께 음원차트를 ‘올킬’했고, 다른 곡들도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SM의 열광적인 인기에 비해 음원차트에 약했다는 평에 대해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거”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솜씨다. 


그러나 SM의 진짜 ‘BASE’는 따로 있다. 거리에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이 음악들에, SM은 특유의 티저, 뮤직비디오 등 그들의 방식을 덧입힌다. 뮤직비디오에서 종현이라는 개인의 매력과 노래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시도는 스토리텔링 같은 쉬운 방법 대신 상의탈의와 쇠사슬처럼 과감하다. 메이크업과 소품, 조명 등으로 강렬하게 만들어내는 종현의 모습은 SM이 뮤직비디오 속에서 구현하곤 하는 가상의 캐릭터다. 이 묘한 조합은 ‘간극’보다 ‘결합’에 방점이 찍힌다. SM의 다른 아이돌처럼 종현은 강렬한 캐릭터를 가진 채 밴드와 함께 요즘 한국 스타일의 소울이라고 할만한 ‘Crazy’를 부른다. 


[BASE]에서 SM, 또는 아이돌은 더 이상 한국 대중음악에서 별개의 장르나 산업이 아니다. 대신 과거와 현재의 한국 음악들을 그 시스템 안에서 포섭하고자 한다. 그 사이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 종현의 보컬인 이유다. 그가 다양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것은 단지 솔로로서 노래를 모두 책임지는 역량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에서 종현이 보여주는 표정과 동작과 결합하면, 그의 목소리는 일종의 연기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만들어낸 일관된 분위기의 공간 안에서, 한 명의 캐릭터로 노래를 소화한다. 종현의 성취는 단지 아이돌이 작곡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금 소화하는 스타일에 아이돌로서 자기만의 색을 입혔다는 데 있다. 한국의 트렌디한 스타일의 음악이, 트렌드를 유지하면서 SM 스타일과 결합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규현이 ‘광화문에서’를 통하여 1990년대 발라드를 소화하는 아이돌로서 예시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앨범 발매시 알려졌던 이수만 회장의 “규현을 SM의 이광조로 만든다”는 발언은 그냥 재미있는 말 이상이다. 그 점에서 종현의 진짜 짝패는 규현일지도 모르겠다.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기획 시스템, 그룹에 비해 다소 부담이 덜한 솔로라는 활동 양상, 그리고 나름의 식견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 개별 아티스트들의 음악적인 도전이 만난 결과물은 의외로 인상적이다. 대기업이 굳이 맥주집을 차렸는데, 제대로 된 크래프트 맥주가 나와서 딱히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 될까? 


ⓒize: 글 서성덕(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