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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의 ‘Everybody’는 장난감 병정이 콘셉트다. 잠들어 있던 장난감 병정들이 깨어나 춤을 추고, 춤이 끝나면 다시 쓰러져 잠든다. 딱 사람이 태엽을 감은 만큼, 원하는 만큼 움직이고 정지하는 장난감들. 하지만 <토이 스토리>는 우리에게 인간이 볼 수 없는 장난감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줬다.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꽤 힘든 노동이고, 서로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샤이니의 김종현이 얼마 전 트위터에 남긴 글처럼. “아그리고 님들하 미노가 나호빗이라고놀려씀 ㅜㅜㅜㅜㅜㅜㅜㅜ 나 데뷔때보다 일센치나컷는데ㅜㅜㅜㅜㅜㅜ”


SNS를 활용하는 아이돌은 많다. 유머감각을 발휘하는 아이돌도, 세상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아이돌도 몇몇 있다. 하지만 김종현처럼 때론 조증과 울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갈 만큼 감정 표현의 폭이 큰 경우는 많지 않다. 멜론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뒤 자신이 우는 사진을 올리고 “미안해요 부족한 내가 이렇게 큰 보답을 받아도 되는지 떨리고 무서워요 어떤 모습을 보여도 지지해주는 당신 때문에”라고 하는 한편, 영화 <관상>을 보고 나서는 “룰루랄라 집에서 관상보는데 너무재미땅 맹꽁이서당이 계속 생각나는 영화군!” 같은 글을 올린다. 당연하다. 스물셋 청년이니까. 하지만 당연하지 않다. 스물셋 아이돌이니까. 김종현은 KBS <불후의 명곡>에서 패닉의 ‘왼손잡이’를 “나는 양손잡이야!”라고 개사한 무대를 선보였다. 약간은 이성을 잃은 듯 질러버린 그 무대가 끝난 뒤, 인터넷에는 공연의 특정 부분만 잘라내 그를 조롱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인디 뮤지션이라면 팬들끼리 공유하고 끝날 재밌는 이벤트가, 아이돌에게는 그의 실력과 성격을 규정하는 근거가 돼버린다.



“한때란다 한때야 날카로운 감정의 기억이 무뎌진다 무뎌져 네모가 닳아져 원이 돼.” 김종현이 만들어 아이유에게 준 ‘우울시계’는 사랑에 관한 노래지만, 이 구절만큼은 아이돌이 만나는 세상에 관한 것처럼 느껴진다. 느낀 만큼 뾰족하게 표현하려고 하면, 세상은 둥글어지라고 말한다. 즐거워도 너무 크게 웃으면 안 되고, 슬퍼도 침착해야 한다. 장난감 병정처럼 대중이 원할 때만 움직이는 것이 좋은 직업. 그런데, 김종현은 뾰족하지도 둥글지도 않은 자신의 방법을 찾아나간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말이 세상을 휩쓸면서 한 성적 소수자가 자신의 안녕치 못한 처지를 대자보로 남겼고, 김종현은 그에게 “제 트윗으로 원치않는 주목을 받으시거나 이슈화로 피해 입으실까봐” DM으로 답했다. 자신은 “연예인으로서, 다른 의미로 대중을 대하는 소수자”로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많은 상실감”을 느끼고,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똑바로 외치시는 모습을 응원”한다고.


아이돌의 둥글지 않은 생각에 세상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 누군가는 그를 ‘개념’ 있다 칭찬했고, 누군가는 정치적이라며 비난한다. 이 일에서 파생된 극우 사이트 일베와 샤이니 몇몇 팬의 반응에 대해 ‘일베 VS 샤이니 월드’ 같은 헤드라인을 뽑아낸 매체도 있었다. 그러나 김종현의 글이 알려진 것은 상대방이 DM을 공개하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상대가 피해를 입을까 봐 DM을 보냈다. 상대가 공개를 원하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감수하고 허락했다. 자신의 뾰족함에 상대가 아파하지 않도록 하는 예의. 뾰족함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김종현의 정치적 입장이나 그가 프로필 사진으로 쓸 만큼 지지하는 대자보에 담긴 주장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익명의 인터넷에서는 무슨 말이든 배설하지만 ‘신상’이 공개되면 말 한마디 하기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청년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되, 예의 있게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돌은 DM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학생들은 절박한 처지를 공손한 말투에 담아 실명을 밝힌 대자보로 붙인다. 그러니, 김종현이나 ‘안녕들하십니까’를 쓴 청년들에게 무언가 한마디 하고 싶은 어른이 있다면 칭찬이나 비판 대신 미안해하길 바란다. 20대 청년이 140자의 입장, 거리의 대자보 한 장도 이렇게 신중하고 공손한 태도를 가져야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 미안함.


김종현의 행동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단지 자신의 뾰족한 뜻을 둥근 세상에 전달하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안녕들하십니까’가 당장 세상을 바꿔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살아갈 삶이다. ‘우울시계’는 쉴 새 없이 ‘우울하다 우울우울’을 반복하면서, 우울함의 감정에 오히려 위트를 불어넣는다. 김종현과 아이유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듯한 목소리로, 조금씩 리듬을 타며 작은 일상에서 느끼는 우울함들을 묘사한다. 그렇게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면서, 살짝 목소리를 높여 부르는 후렴구는 어딘가 처연하게 느껴진다. 우울함마저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넘겨버리면서 오히려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김종현이 작사한 샤이니의 ‘Dangerous’에는 ‘Trouble 소문들만 Double’, ‘넌 원형 없는 폭력들에 어둠 속에 숨어들어’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그는 어둠 속에 숨어드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잘 전달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 발표되는 손담비의 ‘Red Candle’을 만들면서 작곡가로서의 입지도 조금씩 넓혀간다. 무대 위의 장난감 병정 같던 아이돌이 무대 밖으로 내려와 천천히 자신의 음악들을 해나간다. 자신의 뾰족한 생각과 둥그런 방식을 지킨 채. 세상은 그렇게 또 조금 변해간다.


ⓒize: 글 강명석, 교정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