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3185
샤이니를 인터뷰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보낸 일곱 시간이 아이돌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오해를 부풀리다가, 어느 한순간 모조리 허물어뜨렸기 때문에.
'샤이니'의 다섯 멤버는 첫인상부터 너무나 흠 잡을 데가 없었다. 하루 24시간을 촘촘하게 쪼개서 엄청난 양의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그들은 약속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 촬영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곳의 모든 스태프들에게 싹싹하게 인사를 했고. 일곱 시간에 걸쳐 온갖 까다로운 포즈를 요구했지만 싫은 기색 한번 보이지 않았다. 촬영으로 늦어진 저녁 식사를 배달시키려고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묻자 '아무거나, 주문하시기 편한 것'이라는 수더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게다가 무언가를 권하면 '괜찮아요'라고 사양하면서도 꼭 '감사하다'는 인사를 덧붙인다. 다섯 명 모두 감탄이 나올 만큼 행동이 반듯했다. 그래서 뭔가 불안했다. 사람들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야 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죠?"나 "수능은 잘 봤어요?" 같은 질문을 할 때마다 키가 후리후리한 이 청년들이 실은 스무 살 언저리의 소년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지만. "우리 땐 안 저랬는데" 하며 어른답게 혀를 끌끌 찰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국어 교과서에서 쏙 뽑아낸 것처럼 착한 모법 답안으로 <데이즈드>의 지면을 메워야 할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시야가 흐려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지금부터 이어지는 다섯 개의 인터뷰는 '아이돌은 철저한 매니지먼트로 조련한 연예 기획 상품'이라고 확신하던 한 음모론자가 보기 드물게 건조한 태도로 한 아이돌 그룹을 만난 이야기다. 샤이니라는 아이돌. 그 안에서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다섯 개의 빛나는 얼굴을 목격한 현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아이돌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아이돌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과 비범함이 거기 있었다.
종현
"100%의 내 진심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려면 말이 아닌, 어떤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를 음악으로 전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지난 몇 시간 동안 지켜봤는데, 당신은 무뚝뚝한 성격일 것 같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오늘은 어떤 날인가?
활동적인데 좀 시니컬한 날? (웃음)
이런. 인터뷰어에게는 쉽지 않은 날이다.
날씨나 상태에 따라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당신이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라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가?
가수를 인터뷰 한다면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음악이 당신에게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그건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의 마지막 질문이 아닌가. "아무개에게 음악이란?"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옳은 얘기다. 종현에게, 음악이란?
어, 이렇게 되니까 당황스러운걸? (웃음) 내게 음악은 이야기인 것 같다. 가사가 무엇이건, 곡의 분위기가 어떻건, 내가 표현하는 음악은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로 듣는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감동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에 들어오면서부터 당신이 흥얼거리던 노래는, 흥미롭게도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발표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였다. 옛날 노래를 좋아하나?
유재하의 노래는 전부 좋아한다. 푸른하늘의 '7년 간의 사랑'도 아주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악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요즘 들어 감성적인 음악을 많이 듣고 있는데, 그런 음악을 내가 좀 더 깊이 알게 되면 내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의 폭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보컬리스트에게 꼭 필요하다는, 촉촉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모양이다.
그런가? (쑥스러운 웃음) 감정이 무뎌지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한다. 연습생 때는 슬픈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일부러 울기도 하고 그랬다.
오늘 촬영의 주제는 '그 누구의 조종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아이돌'이었다. '사생활까지 철저하게 관리된다'는 흔한 생각을 전복시키자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고정관념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노력하고 준비한 사람들로서는 당연히 성실할 수밖에 없다. 너무 좋으니까 다른 데로 눈을 돌리고 싶지 않은 거다. 말하자면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이 매일 화실에서 그림만 그리는 걸 보고 '멋있게 보이려고 이미지 관리하는 거다'라고 생각하는 게 오해인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인터뷰가 반가운 거고.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객관적인 사람. 그러니까 서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순 없지만, 적어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할 수는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모든 것에 공정한 태도 때문에 앞서 말했던 '빈틈 없이 관리된 이미지'가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언행은 늘 조심할 수밖에 없다. 전혀 의도치 않게 불필요한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해된다.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평소 하던 대로 '까칠한' 질문을 몇 개 쓰다가, 내가 잠시 샤이니의 수십 만 팬들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조용히 지웠으니까.
저런. (웃음) 우리는 연예인이다. 그리고 말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똑같은 얘기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니 더욱더 조심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다.
실수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미리 조심하는게 훨씬 현명하다. 하지만 그런 장점이 오히려 당신을 정답만 말하는 재미 없는 인터뷰이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겠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요즘 깨어있는 시간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뭔가?
작사. 내가 생각하는 시적인 표현은 머리가 아니라 실제로 겪은 일들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언젠가 슬픈 일 앞에서 '세상이 출렁인다'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게 무슨 말일까 생각해봤다. 눈물이 고인 눈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출렁이지 않을까? 글쓴이가 경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글이다. 한 줄인데도 마음에 와 닿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아이돌 그룹과는 멀어졌다. 술 취한 밤이면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에'의 첫 소절을 눈물 바람으로 중얼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다섯 멤버의 평균 연령이 18세 정도인 그룹 샤이니의 화보를 진행하게 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이미지를 무턱대고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신곡 '링딩동'을 꼼꼼히 들어봤다. 그동안 멜로디만 기억하고 있던 노래의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직설적인 가사가 처음에는 좀 낯설었지만 내용인즉슨 사랑에 빠지는 순간 머릿속에 벨이 울린다는 것이었다. 한 번이라도 사랑에 미쳐 정신이 반쯤 나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노래였다. 촬영 날 처음 마주한 그들은 저마다 노래 한 곡씩을 쉬지 않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노래기에 그렇게 열심히 부르냐고 물었더니 다음 무대에서 처음 선보이게 될 곡이어서 연습중이라고 했다. 내가 십대일 때를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들이다. 바쁜 일정 중에도 촬영 내내 놀라운 집중력과 성실한 태도를 보여줬던 그들이 멋졌다. 스스로의 의지로 여기까지 온 그들을 표현하고자 했던 애초의 촬영 콘셉트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날 노래방에서 그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DAZED & CONFUSED: 에디터 신윤영, 패션 에디터 노승효, 포토그래퍼 윤석무
“아아-아아아-♬” 십 수개의 천막 대기실 사이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듣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샤이니의 종현이 발성 연습 중이다. 전날 새벽까지 계속된 드라이 리허설에 이어 <SBS 가요대전> 카메라 리허설이 시작된 현장에서는 연말 시즌 가장 바쁜 가수들과 사흘 가량 잠도 못 잔 제작진들의 마지막 고군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중략…)
그렇게 20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는 1위도 최고 인기상도 없었지만 경력과 소속사에 상관없이 서로의 무대를 함께 즐기며 모두 승자가 되었던 <SBS 가요대전>의 순간들을 <10 아시아>에서 담았다.
ps – 미처 기사에 담지 못한 사진들이 궁금하다면 ‘포토갤러리’ 클릭은 필수!
스무 살 김블링입니다
이놈의 인기…
ⓒ10asia: 글 최지은, 사진 이진혁, 편집 장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