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와 정의 사이, 종현

종현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고, 마치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거리낌 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평범한 내용도 그만의 끼로 특별한 생각이 됐다. 종현의 강한 자신감이 그 베이스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잿빛과 녹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헤어 컬러가 종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는 테스트 촬영을 마친 모니터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의상과 헤어, 스튜디오 분위기가 잘 어울리나요? 어떤 포즈를 취하면 사진이 더 근사하게 나올까요?" 순간 촬영장은 조용해졌다.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종현뿐인 것 같았다. 셀러브리티와 촬영하면 모니터를 한 번도 보지 않는 이도 있고, 무심하게 살피고는 판단은 스태프들의 몫이라 여기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떠한 코멘트를 하지 않는 이도 있다. 종현은 둘 다 아니었다.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감지하고 그 몫을 더 잘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샤이니의 보컬 종현이 아니라 한 명의 아티스트 종현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종현


솔로 앨범 발표를 앞두고 누구보다 새해를 기다린 사람이었겠죠.

설레면서 어서 빨리 왔으면 하고 기다렸고, 한편으로는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받는 직업이다 보니 두려움과 걱정도 함께 느꼈죠.


그러한 과정을 즐기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하나요?

둘 다요. 스트레스 받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스트레스를 즐겨요? 그래서 살이 빠진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요. 저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편이에요.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스트레스를 더 받는 거죠. 하지만 이런 성향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열등감 같은 부정적 감정도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잖아요.


일에서나 일상에서 스스로를 엄격하게 컨트롤하는 사람인가요?

네. 컨트롤이라는 말이 딱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컨트롤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조절 범위가 조금 넓을 뿐이에요. 기준은 다르겠지만 확실히 저는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사람이죠.


팬들에게는 다정하고 무대 위에서 눈물이 많아 감성적이라고 알려졌는데, 촬영 내내 지켜보니 어쩌면 감성보다 이성적이고 차분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판 전체를 보는 디렉터의 마인드를 가졌고요.

저는 논리적이면서 감성적이고 싶어요. 판을 볼 줄 안다고 하셨는데 어떤 작업을 할 때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얼굴만 잘 나오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중요하니까요. 저는 이 현장의 플레이어고 함께하는 스태프들이 제 감정과 의도를 알고 있어야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퀄리티를 위해서라면 마찰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요.[각주:1] 판을 엎자고 온 건 아니잖아요.


자기가 해야 할 몫만 생각하면 더 편한 건 본인 아닐까요?

그렇죠. 물론 저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특별한 코멘트를 하지 않아요. 판단을 유보하는 거죠. 이건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참는 것과 달라요. 솔로 앨범을 만들면서 같이 작업하는 이들과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야기했어요. 상대방이 싫어서 태클을 거는 게 아니니까요.


샤이니의 '드림 걸(Dream Girl)' 무대를 봤는데 하이라이트에서 고음을 처리할 때 한쪽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약간 건방져 보이는 포즈를 취하던데, 무척 적절해 보였어요. 군무가 아닌 혼자만의 작은 동작이지만 곡 분위기가 잘 전달되더라고요.

개인 동작을 디렉팅 받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제가 짜요. 그 동작도 애드리브를 할 때 순간적인 감정이 드러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거죠. '드림 걸'이 다른 샤이니의 곡에 비해 장난스럽고 위트 있으니 저도 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저는 그런 작은 뉘앙스도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솔로 앨범 <BASE>는 종현 씨가 들려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었던 음악으로 잘 채워져 있나요?

네, 지금 이 순간보다 제가 차곡차곡 쌓아온 모습이 담겨 있어요.


지금까지의 모습이라고 하면 샤이니로 데뷔해서 그룹 활동을 통해 배우고 얻은 걸 말하나요?

제 인생과 음악 활동에서 샤이니를 빼놓을 수 없어요. 음악을 해온 시간의 반 이상이 샤이니고 음악적으로 성장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가장 많은 기회를 준 것도 샤이니죠. 이번 솔로 앨범에서 샤이니의 색을 배제해야 할 이유를 전혀 못 느꼈어요. 지금까지의 제 모습을 전부 담은 것이 이번 <BASE> 앨범이고, 제 음악적 기반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나갈 것인지 알려주죠.


이번 앨범은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 종현 씨 음악 활동의 한 챕터를 스스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거군요.

맞아요.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은 요즘 제가 즐겨 듣거나 작곡하는 스타일과 다를 수 있어요. 4년 전에 쓴 곡도 있고 가장 최근에 쓴 것이 1년 전이거든요. 지금의 최신작은 앞으로 또 기회가 되면 들려줄 수 있을 거고, 지금까지 쌓아온 걸 보여줄 수 있어 베이스라는 말이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타이틀 곡 'Crazy (Guilty Pleasure 길티 플레저)'의 제목이 종현 씨의 팬페이지 중 하나의 Guilty Pleasure와 같은데, 의도적으로 반영한 건가요?

팬페이지라는 것도 알고 있고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팬들도 알아요. 이 곡의 콘셉트를 정하고 가사를 쓰다 보니 길티 플레저라는 단어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잘못된 걸 알지만 은근히 즐길 수밖에 없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이잖아요? 죄책감이 동반된 즐거움이라는 역설적 표현도 마음에 들고 이게 사랑과 연결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의미도 담고 싶었어요.


종현 씨의 길티 플레저는 뭐가 있어요?

노 코멘트(웃음).


노 코멘트? 더 궁금해지는데요?

아니요, 잡지에 쓸 수 있는 걸로 고르자면(웃음). 길티 플레저가 너무 많지만 가장 큰 건 잠이나 휴식과 관련된 거겠죠.


기대한 것보다 너무 의외의 답인데요.

가끔은 스스로를 풀어주고 쉬면서 멍 때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일주일 정도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고 얘기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어요. 푹 쉰 적이 많지 않아요. 쉬는 시간 자체가 길티 플레저예요. 계속 뭘 해야 하는데, '이럴 때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강박을 들 수 있겠네요. 아, 제 가사도 길티 플레저예요(웃음). 지지리도 못난 남자, 세상에서 가장 비루한 내용이거든요.


솔로 앨범은 언제 들으면 가장 좋을까요?

하루 일과를 다 끝내고 퇴근해서 씻고 잠들기 전에 1번부터 들으면 30분 안에 끝나요. 그리고 '시간이 늦었어'라는 보너스 트랙이 나오면 정말 늦은 시간이니 잠자리에 들면 돼요. 트랙 순서를 잠들기 좋게 만들어놨어요. 대부분 그 시간대에 쓴 곡이기도 하고요.



“혼자 있을 때 향초 피워놓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드는 걸 좋아해요. 아, 이런 생각은 혼자 하지 말고 남들도 들어줬으면 좋겠다 싶으면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있고, SNS에 올리기도 하죠.”


“일상이 바빠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처 챙길 여유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끊임없이 내가 속한 사회,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해요. 당연한 거죠.”



SNS를 활발히 하고, 라디오 DJ도 하고 있는데 둘 다 자신을 숨김없이 노출시켜야 하는 영역이죠. 어찌 보면 겁 없는 사람 같기도 해요. 아니면 단순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거예요?

둘 다죠. 겁이 없다기보다 아까 말했듯 마찰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저는 가수지만 요즘 들어 20대 청년으로 살아가는 모습 자체를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 머릿속에 있는 아이돌은 누군가의 우상이고, 제가 좋아했던 우상들이 제게 끼친 영향을 떠올려 보면, 저도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하죠. 음악적인 부분을 떠나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적 측면에서도요. 그런 부분들을 라디오와 SNS를 통해 표현하는 거죠.


SNS에서 한 말이나 행동이 이슈가 된 적이 있어요. '불필요한 파장'[각주:2]을 피하기 위해 조심하고 있나요?

조심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안에서 의도적으로 걸러내진 않아요.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죠.


그간의 말을 쭉 지켜보면서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성숙해지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모든 말의 기준은 정의예요. 지나치게 비뚤어진 시선과 가치관이 아니라면 정의는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권선징악에 대해 항상 얘기해요. 선한 건 선하고 악한 것은 패망하죠. 당연한 건데 세상은 그렇지 않죠. 나중에 시간이 흘러 청년 시절의 저를 돌아봤을 때 세상의 모순에 관심조차 갖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말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살다 보면 필요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걸 뿌리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이럴수록 사람들이 종현 씨에게 거는 도덕적 기대감이 점점 높아질 수도 있어요.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제 이미지를 위해 대중의 반응을 미리 계산해서 행동하지는 않기 때문에, 만약 부적절했다면 제가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종현 씨가 생각하는 장인 정신은 뭘까요?

고민과 통증이오. 통증을 느낀 만큼 고민했다는 거고, 고민이 담긴 음악은 더 많은 걸 내포할 수 있어요. 고민 없이 만든 음악이 더 좋은 경우도 있지만, 그걸 노리고 곡을 쓴다면 이미 고민을 하고 있는 거죠. 저는 성장통을 겪은 결과물이 가장 좋고 그래야 진짜 제 것 같아요.[각주:3]


한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가 방패라고 말한 적 있죠. 그 방패가 사라지면 종현 씨에게 무엇이 남을까요?

이미 사라지고 없어요. 청년이 되었잖아요. 단순히 나이가 기준은 아니에요. 그 얘기를 했을 때는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이 이해하고 넘어가 줄 거라는 뜻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그게 통할 나이가 아니죠.


아직 그래도 될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제가 사회생활을 한 지 8년이 됐는데도 어린 모습을 보여주면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죠. 그 대답을 했을 때도 팬들이 어리니까 봐줄 거라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방패가 사라진 종현 씨가 어떻게 승부를 볼까 궁금하네요.

방패가 없으면 공격뿐(웃음)? 그냥 저로요. 굳이 어떤 걸 찾는 게 아니라 제가 가진 그 자체로 승부해야죠.


ⓒTHE CELEBRITY: 포토그래퍼 강태훈, 에디터 고현경, 헤어 유다, 메이크업 김범석, 스타일리스트 연시우, 세트 스타일리스트 박주영, 어시스턴트 이승원

  1. “마찰을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실. 세상과의 마찰이라든지, 생각과 여러 가지 차이점을 서로 이야기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로 부딪치고 이야기 나누고 서로 타협해 나가고 인정하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야기 하지 않고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냥 그저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라지는 것들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니까, 사라져 가는 무언가를 안타까워 하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면 막을 수는 없더라도 ― 나의 행동이 그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더라도 ― 어느 정도 나의 신념을 표출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5년 1월 12일 푸른밤 [본문으로]
  2. “언행은 늘 조심할 수밖에 없다. 전혀 의도치 않게 불필요한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DAZED & CONFUSED [본문으로]
  3. 성장과 성장통, 그리고 성장의 증거 관련 종현의 인터뷰 정리는 여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