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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봐
주춤거리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종현은 앞으로 간다.
종현
“가사는 주로 휴대전화 메모장에 써요. 처음 몇 줄만 음절에 맞춰 임팩트 있게 써놓고, 그 뒤론 이 가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스토리텔링 구조를 덧붙여요.”
밸런타인데이네요, 오늘.
네. 라디오 진행을 하다 보니까 그런 건 모를 수가 없어요.
남 얘기 같아요?
완전 남 얘기죠. 딴 세상. 기념일 챙기고 이런 거 안 좋아해서…. 팬들한테도 매년 이야기해요. "상술입니다. 선물하지 마세요."
내일이 솔로 활동 마지막 방송이에요. 이런 것도 별 감흥은 없겠네요.
네.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뚝 사라지기 때문에….
솔로 활동을 자평하자면?
재미있었어요. 예상하는 것들이 빗나가 더 재미있었던 것도 있고요.
타이틀곡요?
네. 어쨌건 메인 타이틀은 '크레이지'였는데 방송을 많이 한 건 '데자-부'가 됐어요. 플레이어에게 타이틀곡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곡'이에요. 그런데 메이커에게 타이틀은 '떠야 하는 곡'인 것 같아요. 이 두 가지 접점이 잘 맞아떨어진 곡이 '데자-부'이고요. 내 음악의 흔적이 '데자-부'라면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과 고민의 흔적이 '크레이지'가 아닐까….
짐작과 결과가 달라 깨닫게 된 것도 있겠죠?
이번 활동에서 뭘 배웠는지, 확실히 생각을 정립하지 못했어요. 활동 끝나면 하루 정도 생각의 시간을 가질 거예요. 아, 지금 잠깐 생각해볼게요. 음…. 앨범을 만들면서 대중적 반응이랄까, 이게 좀 더 사람들의 귀와 눈을 끌겠지, 라는 것들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어요. 활동을 하면서 맞아떨어진 부분은 확신이 됐고, 내 의도와 달리 해석됐더라도, 식견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기란 힘들죠.
맞아요. 사실 앨범을 서포트해주는 사람들은 플레이어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 플레이어의 좋은 점만 봐주고 그걸 극대화시킬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요. 전 이번 앨범에서 메이커와 플레이어의 역할을 오갔기 때문에, 그 대상이 저 스스로라는 점이 좀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타이틀곡만큼은 제가 플레이어의 입장에만 충실하겠다고 얘기했어요.
그 말은, 다른 곡에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겠다는 선언 같은 거죠?
하하. 그런 것도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 '크레이지'와 '일인극' 두 곡을 제외하고는 저의 의도와 바람대로 다 한 곡들이에요.
몇 년 전 <GQ> 인터뷰 때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고. 그려왔던 대로 걸어왔다고요. 1
네. 근데 그때 그 말을 사람들이 좀 오해한 부분도 있었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했다는 게 사고 싶은 걸 다 사고, 먹고 싶은 걸 다 먹는, 이런 일차원적인 이야기가 절대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이상향, 방향성을 잡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뭔가 단어의 뉘앙스를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멋있었어요. 아직도 유효한 말인가요?
어렸을 때는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을 했고 지금은 작곡가가 되고 싶어 곡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아직도 전 하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좋은 곡이 나오든, 좋은 곡이 못 나오든, 그건 평가의 문제지 방향성에 대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동시에 이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도 같아요.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요?
그럼요. 그 일을 했을 때 기쁜가 안 기쁜가.
하고 싶어서 했는데, 묘하게 안 기쁠 때도 있잖아요.
그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달려가다 초점이 흐려졌을 때 문제인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쳐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대에 올라가서 춤을 열심히 춰야 되고, 무대에 올라가서 춤추려면 연습을 해야 하고요. 그럼 연습을 하는 게 내가 하고 싶은 걸까요? 이건 되게 애매한 거잖아요. 춤연습을 열심히 해서 결과적으로 곡을 잘 쓸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전 그것도 같은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거죠. 지금 당장 행복하고 즐겁고를 떠나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하고 싶은 일이죠. 예를 들면, 저는 이런 게 좀 힘들어요. 카메라 앞에서 남들을 웃기는 거. 예능 프로그램 촬영이 어려워요. 그런데 그걸 함으로써 제가 다른 많은 기회를 얻게 된다면요? 같은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고 하기 싫은 게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빠져드네요.
사기꾼이에요, 저. 하하하. 사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선생님이 될 상인 것 같은데, 사주를 보아하니 어렸을 때 공부를 전혀 안 했으니 이건 사기꾼의 사주라고요. 흐흐.
그 역술가 사전엔 직업이 몇 개 없나 보네요. 이런 얘기 더 해볼까요? 뜬구름 잡는 건지 몰라도 재미있네요.
하하. 근데 전 뜬구름 잡는 거 안 좋아해요. 뜬구름을 끌어내려서 마무리지어야 되는 성격이라서요.
친구들과 만나면 말을 제일 많이 하나요?
그런 무리도 있고요, 아닌 무리도 있죠. 항상 사람은 무리에 따라 표정을 바꾸니까요.
발전하려면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통증. 어떻게 보면 되게 부정적인 단어잖아요. 그런데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장통 뒤 생기는 살트임처럼, 혹시나 통증에 증거가 남는다 해도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2
확신한다는 건 경험해 봤다는 뜻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요. 꼭 통증으로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슬럼프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슬럼프는 나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코마 상태가 오는 거고, 통증은 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부딪히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더 무서운 건 슬럼프가 왔다는 것도 모를 때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요즘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이 말이 단순히 성실히 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아요. 겉으론 굼떠 보이지만 제대로 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제 기준에 초심은 물음표에 가까워요. 물음표를 지우지 않는 것이 초심을 잃지 않는 것, 계속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가….
8년 차인데, 굴곡이 있다면요?
모두가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내가 간 학교가 제일 힘들고 내가 하는 야간자율학습이 제일 늦게 끝나고 내가 간 군부대가 제일 빡세고. 제 인생의 굴곡도 특별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남들과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세 번 정도의 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니, 어떤 일이었는지 묻진 않을게요.
뭐 그다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흐흐.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요? 이번 앨범에선 특히 곡마다 톤이 바뀌는 보컬이 화려했죠. 실험 같은 건가요?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면 1번 트랙에서 마지막 트랙까지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좋은 앨범인 경우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요. 그런데 제 생각엔 여러 가지 색을 내는 앨범도 나쁘지 않거든요. 이번엔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아요. 내가 가진 여러 스타일을 곡에 맞춰서 계속 사용할 것 같아요. 다음 앨범이 언제 나올지 모르고, 그때 작업에 들어가봐야 알겠지만, 그때도 아마 보컬에선 지금처럼 전투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요?
'Neon'에서처럼요? 목소리와 잘 어울렸어요.
제 목소리와 어울리는 곡은 'Neon'과 '데자-부'인 것 같아요. 'Neon'은 멜로디 메이킹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기교, 고음과 화성을 때려 박은 곡이에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애드리브와 여러 가지 톤을 사용하지는 게 애초에 작곡 콘셉트였어요. 그런 부분에서 제 보컬이 가장 극대화될 수 있는 곡인 것 같아요. '데자-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뉘앙스가 많이 들어가 있어요. 발음의 뉘앙스나 음가가 없는 내레이션 같은 거요.
노래하는 자신의 목소리는 어디서 들을 때가 가장 좋았어요?
제 방이오. 좋은 인이어 귀에 꽂고요.
주로 몇 시쯤이에요?
밤 열두 시 넘어서인 것 같아요. 이번 노래들은 다 그때 썼어요. 그 시간이 주는 감성에 가장 잘 맞는 멜로디와 가사예요.
정말 좋은 노래가 있어요. 전 세계 어디든, 정말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있다면, 어디를 고를래요?
제 방이요. 익숙한 곳에서 멀어지는 걸 싫어해요.
뭘 입고 있죠?
속옷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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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포토그래퍼 안하진, 에디터 손기은, 스타일리스트 배보영, 헤어&메이크업 이소연, 어시스턴트 류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