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파 아이돌 종현의 첫 정규 앨범 <좋아> 찰떡궁합 협업으로 만든 ‘아르앤드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억을 한번 되돌려보자. 지금은 즐거운 추억팔이 대상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 같은 젝스키스지만, 그들이 한창 활동하던 때 그 시절은 아이돌 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H.O.T.와 젝스키스. 라이벌이니까 공평하게 한 번 더, 젝스키스와 H.O.T.가 활동하던 그때 아이돌 그룹은 진지하게(?) 음악을 듣는 이들에겐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음악은 늘 쉽게 폄하됐고, 음악시장을 망치는 주범처럼 묘사되곤 했다.
지금이야 아이돌 그룹의 음악도 진지하게 평단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음악을 싸잡아 얕보면 오히려 꽉 막힌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이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돌 그룹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이른바 ‘자작곡’이라는 거였다. “이번 앨범에선 저희가 직접 곡 작업에 참여했습니다!”라는 방송 인터뷰를 우리는 심심찮게 봐왔다. 경력이 쌓여가며 자연스레 생겨나는 음악적 욕심과 우리도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걸 봐달라는 인정욕구가 더해진 것이 아이돌 그룹 멤버의 자작곡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다.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들은 늘 과잉으로 차 있었다. 이제 막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이들이 만든 습작 같은 노래도 많았다. 과잉으로 가득 찬 음악에 대한 록 엄숙주의자들의 조롱과 그 안에 깔려 있는 아이돌 그룹에 대한 폄하가 더해져 만들어낸 악의적인 ‘무뇌충’ 캐릭터가 그 시절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리 먼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빅뱅처럼 ‘실력파’를 자청하며 등장한 아이돌 그룹이 자신들의 재능을 증명해 보였고, 아이돌 그룹 일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독자적 활동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자신의 취향과 세계를 드러내려는 멤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현(사진)은 이런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경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티스트다. ‘가수’와 ‘아티스트’의 차이가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를 구분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종현은 아티스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나온 첫 정규 앨범 <좋아>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종현과 <좋아>가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앞서 길게 말한 그 과잉의 흔적과 인정욕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취향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는 지금 시대에 귀하게도 ‘앨범’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보여주기 위해 좋게 보이는 것을 전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앨범에 맞게 일관된 색과 콘셉트를 입히려 했다. 모든 것을 자신이 하려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다른 이들의 도움을 빌릴 줄도 알았다.
<좋아>의 수록곡 <오로라>(AURORA)를 듣는 순간 자연스레 한국의 대표적인 아르앤드비(R&B) 음악가 디즈가 떠오른다. 종현이 만든 곡을 디즈가 편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곡은 종현의 곡이며 디즈의 곡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이 곡이 정말 잘 만들어진 아르앤드비 싱글이라는 것이다. 이런 협업으로 만들어진 좋은 곡들이 앨범에 가득하다. 우리는 좋은 아르앤드비 앨범 하나를 더 얻게 됐다. 그리고 좋은 프로듀서 한 명도 더 알게 됐다.
ⓒ한겨레신문사: 김학선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