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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고백으로 시작하자. 나는 남성 5인조 보이밴드 ‘샤이니’를 좋아한다. 그들의 제일 최신 앨범인 ‘더 미스컨셉션 오브 어스’는 그들이 아이돌이라는 이유 때문에 음악적 저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노래 ‘셜록’의 무대는 한국 대중가요사에 길이 남을 혁신적인 안무였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30대 남성이 알록달록 색색깔의 스키니진을 입은 남자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닌 건지, 어디 가서 내가 이런 고백을 하면 종종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왜요?” 아니, 왜긴 왜야. 내가 좋다는데.


샤이니의 멤버 종현이 새삼 화제다. 최근 대학가에서 고등학교, 중학교로, 직장으로, 사회로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사진을 에스엔에스(SNS) 프로필 사진으로 내건 게 계기였다. 종현이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한 대자보는 성공회대학교 강은하씨의 대자보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여성에 대한 부당한 비난,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 20대로서의 삶에 대해 발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현은 강은하씨와의 대화를 통해 “다른 의미로 대중을 상대하는 소수자로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많은 상실감을 느낀다”며 공감과 지지의 의사를 밝혔다.


좋아하는 그룹의 좋아하는 멤버가 양식있는 행동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니 팬이 된 도리로 당연히 기뻐야 하는데, 내심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종현의 행동을 용기 있다고 칭찬하는 목소리나, 섣부른 행동이었노라 비난하는 목소리나 이래저래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좀 색다르게, 종현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종현의 행동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불편한 이유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샤이니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는 앞으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종현의 행동을 섣부른 일이었노라 말하는 사람들의 요지는 대체로 이렇다. 연예인은 널리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공인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함부로 정치적인 입장을 밝히면 안 된다고 말이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명했던 배우 김규리나 김혜성 등이 이러한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바 있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연예인이 정치적인 입장을 밝히면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대중이 무분별하게 그 입장을 받아들여 선동당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제는 말하기도 지겹지만,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공인’이란 용어의 정의는 나라나 사회마다 조금씩 다르다고는 하나, 굳이 규정하자면 ‘공직에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유명인’ 정도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명백하게 사적 이익을 위해 복무하며, 공적 분야가 아닌 기업과 거래해 수익을 올리는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상대적으로 유명한 사적 개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양심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그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


샤이니 종현 ‘안녕들’ 지지 밝히자 

‘공인이 대중을 선동한다’며 비난 

“딴따라가 뭘 알아” 뿌리 깊은 하대 

반면 “아이돌이 생각이 깊네” 찬사도 

양쪽 다 멸시·편견서 자유롭지 못해 

자신의 의사 밝히면서 겁을 먹거나 

대단한 일로 여길 필요도 없어야


연예인이 대중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알아서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어딘가 이상하다. 연예인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사회적 운동에 앞장서는 이유가 바로 그 대중적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환경보호 운동에 앞장서 온 최강희나, 저개발국 어린이 돕기에 헌신해 온 김혜자, 유기동물 보호 및 입양 운동에 앞장서 온 이효리 모두 자신들의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대중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어떤 사회적 운동은 연예인의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권장되고 어떤 사회적 운동은 자제해야 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세우는 것인가?


대중이 판단능력이 떨어져 연예인들이 하는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라는 전제 또한 대중에 대한 근거 없는 무시이지만, 백 보 양보해 설령 그렇다고 한다 해도 그것이 연예인들의 발언을 자제시키거나 비난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대중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 정도의 사고 능력도 키워주지 못하는 교육 과정의 문제일 뿐이다. 주어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적인 덕목이고, 9년의 의무교육과정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연예인의 말 한마디에 흔들릴 정도로 대중이 무지하다면 그것은 교육과정의 문제지, 연예인들의 권리를 제약할 어떠한 근거도 될 수 없다.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을 막는 또 하나의 편견은 “딴따라가 뭘 알겠어”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연예인에 대한 뿌리 깊은 하대다. 이는 연예인은 지적 소양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과, 일정 이상의 지적 수준을 갖추지 못하면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해선 안 된다는 엘리트주의의 결합이다. 다시 한번 헌법을 인용하자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배움의 정도에 무관하게 누구든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을뿐더러, 연예인 또한 연예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지적 수준을 지레짐작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특히나 아이돌 가수나 젊은 배우들의 경우 더 극심한 편견에 시달린다. ‘그저 얼굴이 잘생긴 탓에’ 연예인이 되어 ‘회사에서 찍어낸’ 대로만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에 익숙해진 ‘인형’이나 다름없는 ‘어린애’들이 무슨 자기 주관이 있겠느냐는 편견이 수차례 더 작용하기 때문이다. 샤이니의 종현 외에도 평소 자기 주관을 꾸준히 밝혀왔던 배우 유아인이나, 이번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지지에 동참한 투피엠(2PM) 멤버 찬성 등의 젊은 연예인들은 이러한 비난을 마주해야 했다. 문제는 종현의 행동을 용기 있는 행동이었노라 칭찬하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은연중에 이러한 편견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에서 연예인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가히 종교적 열정에 가까운 태도로 비난하는 와중에 어느 한쪽에 대한 지지를 밝힌다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제동이나 김여진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지닌 연예인들에 대한 보수진영 일각의 비난이나, 이순재, 이덕화 등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힌 연예인들에 대한 진보진영 일각의 비난은 원색적이라는 점에서는 피차 매한가지다.(누군가는 “진보 성향의 연예인은 정권 교체 후 석연치 않은 하차를 당한 것에 반해, 보수 성향의 연예인들이 그런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지 않으냐. 어떻게 두 가지를 같이 놓고 비교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방송국의 석연치 않은 하차 압력과, 연예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대중의 날 선 반응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나는 지금 후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종현의 행동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일부 찬사의 이면에도 “아이돌 가수가 이렇게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군”이라는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 종현의 행동을 ‘기특해’하는 기성세대의 시선 또한 결국 젊은이들에 대한 무시, ‘딴따라’에 대한 멸시와 ‘아이돌 가수’에 대한 편견에서 영 자유롭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과도 그리 멀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대학생들에 대한 ‘기특함’이나, “어린것들이 뭘 안다고 떠드냐”는 ‘못마땅함’ 모두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시야니까 말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의 핵심은, 처음 대자보를 썼던 주현우씨의 말처럼 “알고 보니 말하는 건 허락받고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에 있다. 자신의 의사를 말하는 것에 대해 겁을 먹거나 대단한 일로 여기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며, 연예인의 발언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만큼이나 호들갑스러운 찬사로 찬양하는 것 또한 그 건강한 사회를 불러오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다. 종현이 제 입장을 밝히는 일이 그가 신곡을 발표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우린 조금이나마 안녕해질 수 있을 것이다.


ⓒhani.co.kr: 글 이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