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0 × 2160



[보그 독점] 파리로 간 SM TOWN과의 72시간: K-POP shakes Paris

그날의 백스테이지엔 오직〈 보그〉의 카메라만이 초대 받았다. 파리로 간 SMTOWN과의 72시간. 시간은 짧았고 여운은 길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파리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르 제니트에 K-POP을 사랑하는 유럽 팬들이 집결한 그날. 팬들의 요청으로 아티스트들의 사진과 한국판 CD 등 기념품을 판매하는 부스까지 마련됐다. 슈퍼주니어의 팬클럽 이름 ‘엘프’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온 관객을 비롯해 팬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팀을 위한 응원도구도 챙겼다. 이 다국적 팬들과 취재진을 위해 SM TOWN은 공연 전 합동 기자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4월,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한국 아이돌의 음악에 맞춰 플래시 몹을 벌이던 소년소녀들이 있었다. 출발은 거기서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시각으로 6월 10일 파리에서 열리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SM TOWN)의 콘서트를 하루 더 연장하라는, ‘문화적 시위’ . 시위는 통했다. 추가로 잡힌 콘서트의 예매표 역시 단 몇 분 만에 매진됐다. 그 후로 한국 언론은 한국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파리에서 여는 대규모 공연 ‘ SM TOWN 월드투어 인 파리’에 대해 숱한 뉴스를 양산했다. 이 리포트는 그날들의 풍경을 먼 거리에서 지켜본 타자의 감상이 아닌, 가수들과 함께 보고 겪은 바를 바탕으로 한다. SM TOWN으로부터 특별한 초대를 받은 〈보그〉의 독점 리포트. 이 여정의 공식 스폰서인 라코스테와 함께했던 SM TOWN은 라코스테의 이미지 만큼이나 싱그럽고 발랄했다. 마침 라코스테는프랑스의 브랜드. 그리고 오직 우리에게만 공개될 르 제니트 드 파리(Le Zenith de Paris)의 백스테이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6월 8일 PM. 1:40 인천공항


이 공연을 위해 3백여 명이 이동했다. 가수 34명과 스태프 120명을 비롯, 공중파 3사의 방송연예 프로그램팀과 각종 매체의 취재팀(여기엔 사비를 들여 파리 행을 택한 취재진도 적지 않다)까지 합한 수다. 이들 모두가 한꺼번에 수속을 밟고 있으니 인천공항은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 대군단의 짐이 허용된 용량을 훌쩍 초과한 탓에 어마어마한 ‘오버 차지’를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무리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이 여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취재진들은 입국장 안에서도, 비행기에 올라 타서도 토론을 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K-POP의 실체와 성공여부’였다. 수많은 해외 공연을 치렀지만 유럽에서의 공연은 치러본 적 없는 가수들 역시 기대와 고민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한국 아이돌’을 띄우는 뉴스들은 이미 던져졌는데, 막상 관객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으면 어떡하나. 아, 표는 매진됐다고 했지. 하지만 언론이 예고한 것처럼 열광하는 유럽 팬들을 과연 볼 수 있을까? 설렘과 걱정과 긴장이 교차했다. 그리고 비행기는 떠났다.


6월 8일 PM. 6:30 파리 드골공항


이들은 대체 누군가! 인천공항이 어수선했다면, 12시간 후 발자국을 찍은 드골공항은 혼돈과 아우성의 현장이었다. 공항 측이 어림잡아 집계한 1천여 명의 인파들, 이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들이 환호로 기습하는 풍경은 놀랍기만 했다. 사실 해외에 나갔을 때 한국 가수를 맞이하는 팬들 중 다수는 교포나 한국 유학생들이다. 일대 무리가 장관을 이룬 이곳에서 정말로 동양인은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낯설고 새롭게 다가왔다. 공항 직원들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들은 이 무리가 ‘아시아’의 아티스트들 때문에 몰린 인파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해외’의 스타가 파리를 찾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드골공항에 막 도착한 우아한 관광객들은 이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면 당장 끌고 갈 거라는 표정을 지었다. 파리에 도착한 순간부터 기민하게 스냅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은 사진가는 무리에 치이고 쓸려가다가 결국 촬영을 포기하고 말았다. 〈보그〉 카메라를 보며 ‘V’를 날려주기로 했던 동방신기의 미션은 어쩔 수 없이 ‘미션 임파서블’ .


6월 9일 PM. 8:00 메르디앙 호텔과 파리 시내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이들 ‘SM TOWN’이 머무는 호텔 앞엔 여전히 몇 무리의 팬들이 북적대고 있다. 호텔 측은 오도 가도 못하는 한국 가수들을 위해 8층의 라운지 테라스를 오픈하고, 그곳에서 매끼 식사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슬슬 걱정과 긴장감보다 뿌듯한 마음이 커가기 시작했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가 말하길, “여기가 동남아시아였으면 팬들이 멤버들의 객실 바로 옆 객실이나 주변 호텔에까지 투숙했을 거예요. 그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시차에 적응할 여유 따위는 부릴 수 없다. 그저 리허설의 반복이 있을 뿐. 가장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건 슈퍼주니어. 슈퍼주니어는 공연 전날인 오늘밤 도착해서 공연을 마치면 바로 떠나야 한다. 심지어 한 팀은 한국에서, 또 한 팀은 대만에서, 나머지는 일본에서 출발해 파리로 모였다. 샤이니 멤버들은 잠시 짬을 내 에펠탑의 야경이 멋진 비라켕 다리로 갔다. 겨우 사진 몇 장 찍고 돌아가려는 순간, 조용히 다가오는 네 명의 남녀들. 그들은 다가오더니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알고 보니 도미니크에서 공연을 보러 온 샤이니 팬들이었다. ‘이 넓은 땅에서 샤이니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눈물만 나온단다. 사실 지금 파리의 젊은 층에겐 열광할 만한 문화가 별로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고한 파리지엔’ 말고 보편다수의 평범한 소년 소녀들, 그들의 눈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해 있는 한국문화가 신선하게 다가오나 보다. 어떤 소녀는 쪽지를 쥐어주더니 ‘동방신기 오빠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다. 흑발에 검은 눈동자를 갖고 싶다고도 했다. 멤버 중 김희철은 컨디션에 무리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경호원을 대동하고 밤길을 나섰다. 혹시 눈물 떨구는 팬 무리와 마주치는 건 아니겠지?


6월10일, PM.7:00 르 제니트 드 파리


D-day! 갑작스레 장대비가 내렸다. 공연장은 호텔에서 15분이면 닿는 곳에 있었지만, 장대비 속에서 모든 차들이 파리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무려 두 시간이 걸려 도착한 ‘르 제니트 드 파리’ . 스탠딩 1천 석을 포함 총 7천 명 정도 수용 가능한 이곳은 LA스테이플스나 도쿄 돔에 비하면 아담한 규모다. 대기실 역시 단출했다. 그러나 파리에선 제일 큰 공연장이다. 각 국 취재진들은 〈보그〉에만 백스테이지 취재가 허락된 것을 부러워하며 그 안의 상황이 어떤지 묻기도 했다. 큰 규모의 공연 경험이 많은 SM TOWN이기에 현장이 엄숙하거나 긴장된 분위기는 아니었다. 첫 순서는 f(x)였다. 이후 차례는 샤이니,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순으로 이뤄졌지만, 몇 곡의 무대를 마친 팀이 그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식이었다. 제시카와 크리스탈 자매의 듀엣, 태연과 티파니의 물랑루즈, 루나와 은혁과 태민 등의 댄스 배틀 등이 작은 이벤트였다면, 남자 멤버들이 여장을 하고 커버 퍼포먼스를 선보였을 때의 반응은 압권이었다. 레이디 가가로 변장한 김희철,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를 몸으로 열창한 이특, 은혁, 신동. 진한 화장을 한 이들의 몸짓이 위트와 섹시함을 오갈 때마다 꽉 찬 7천 관중이 자지러졌다. 행여나 진지한 모습만을 기대한 유럽 팬들에게 ‘한국 스타일’의 유머가 통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소녀시대가 ‘Gee’와 ‘Oh’를 부를 때 관중은 한국어 가사를 ‘완벽하게’ 따라 불렀고,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는 와이어에 매달린 채 부유했다. 퍼포먼스 중심인 아이돌의 공연은 이들에게 흥미로운 문화 충격일 것이다. 운집한 이 팬들의 국적은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 스페인, 핀란드, 이탈리아, 폴란드 등으로 다양했다. 공연 현장을 통해 비로소 K-POP을 사랑하는 유럽 팬들의 기운을 체감했지만, 그 속에서 “우리에게 피자 말고 슈퍼주니어를 달라”고 정확한 한국어로 쓰여 있는 플래카드와 서툰 한국어로 쓰여 있는 플래카드, 휘날리는 태극기 등을 목격하는 건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첫날의 반응이 미덥지 않으면 퍼포먼스 내용을 바꾸려 했던 계획은 잊혀졌다. SM TOWN은 프랑스문화원의 조치로 자원봉사자들에게 짧으나마 간단한 불어 강습을 받았다. 물론 동시통역사가 있었지만, 관객을 향해 이야기할 때 멤버들은 불어로 인사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장장 3시간에 걸친 공연 동안 44곡의 무대가 이어졌다. SM TOWN 페이스북은 실시간으로 노래 제목과 가수를 소개하는 포스팅을 올렸다. 최준호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장이 말했다. “오늘은 프랑스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붐이 시작되는 밤입니다.”


6월 12일 AM. 10:00 메르디앙 호텔


아침식사 자리에 어제의 가수들이 모였다. ”혹시 ‘임윤아’라고 써 있는 티셔츠 입은 할아버지 봤어요? 정말 기분 묘했어요.” “K-POP팬들은 한국에서 건너온 커피, 책 등에도 관심이 많대.” “다들 춤 연습도 따로 하나 봐. 객석에서 너무 매끈하게 따라 하니 나도 더 열심히 추게 되더라.” 모두 소름 끼치도록 짜릿했던 그순간을 재잘거리며 공유했다. 어제 유노윤호는 공연을 마친 뒤 탈진 증세를 보였다. 이슬만 먹고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진 소녀시대 멤버들은 밥과 라면에 집중했다. 이들은 계속되는 활동만으로도 상당한 체력 소모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 공연하는 거 보셨죠? 거의 매일 공연하는데 안 먹으면 병나요.” 시간은 짧았고 여운은 길었다. 동방신기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일본에서 발매되는 영상화보집 작업을 위해 스페인으로 향했다. 샤이니는 일본과 런던에서의 스케줄을 위해 떠났다. 공연장에 몰려든 한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방송과 지면 매체들의 취재 열기는 잔영처럼 남아 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공연이 끝난 후 유럽 음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SM의 시스템과 특징에 대해 소개하는 컨퍼런스를 열었다. 〈르 몽드〉는 적잖은 분량으로 ‘SM TOWN 월드투어 인 파리’와 SM 엔터테인먼트를 다뤘다. 타이틀은 ‘K-POP 열풍이 유럽을 지배하다’라고 내세웠지만, 내용은 감정을 누르고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채운, 건조하고 꼼꼼한 기사였다. 중요한 건 현지 언론들이 지면을 할애할 만큼 K-POP을 대변하는 SM의 문화적인 파장이 있다는 점이다. 그 파장의 한가운데 〈보그〉의 카메라가 있었다. 72시간의 흔적들이 흑백 사진 속에 꼼꼼히 기록됐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유튜브의 SM공식 채널에는 대륙의 구분이 무의미한 팬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K-POP이 진정 글로벌한 지점으로 진입하는 막은 올려졌다.


ⓒVOGUE: 에디터 권은경(KEK), 포토그래퍼 김영준, 글 최진우, 공식 스폰서 라코스테(LACOS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