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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의 '오늘 뭐 듣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겸 음악평론가 어떤 음악을 들어야 '잘 들었다'는 칭찬 받을 수 있을까?


어떤 기사를 봤다. 샤이니의 멤버이자 솔로로도 활동 중인 종현의 단독 콘서트에 대한 호의적인 리뷰였다. 그런데 우연이었을까. 내 페친 중에 한 명이자 음악평론가인 어떤 분이 종현에 대해 호감을 표시한 글도 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종현이 진행하는 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에서 꽤 오랜 기간 원고를 썼던 코너 작가였다.[각주:1] 어디 이 뿐인가. 이를 인연으로 삼아 게스트로 몇 번 나가기도 했는데,[각주:2] 방송에서 ‘순퐈(‘순’타기 오‘퐈’)’라는 별명까지 득템했던 바 있다.[각주:3] 또한 출연 당시에 “얼굴에 붓기 빠지는 음악 좀 알려주세요.”라는 청취자의 요청에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Boogie Wonderland”를 추천하여 대박을 쳤다는 일화는 이후 전설적인 에피소드로 남겨졌다고 한다.[각주:4] 믿거나 말거나.


먼저 짚고 넘어가자. 흔히들 아티스트(뮤지션)의 반대말을 아이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다음의 리스트를 쭉 읽어보길 바란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스(The Beatles),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다 외국 뮤지션/밴드 아니냐고 반문할 팬들을 위해 한국 쪽도 나열해본다. 서태지, 그리고 고(故) 신해철.


솔로활동으로 진가를 알리고 있는 그룹 '샤이니'의 종현. 출처=SM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위에 언급한 인물들은 공통점을 하나 지니고 있다. 모두 처음에 아이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이들이 아이돌 시절에 들려줬던 음악들이 꽤나 괜찮거나, 심지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어떤 가수나 뮤지션을 구분하는 잣대나 준거는 ‘아이돌이냐, 아니냐.’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기실 사람들은 대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돌이라고 하면 갑자기 몸서리를 치면서, “이건 음악이 아니야”라고 일갈하는 경우들을 심심찮게 본다. 아마도 아이돌 음악이 정말이지 과하게 많기 때문일 것인데, 그럼에도 옥석을 구분하는 과정은 거쳐야하지 않을까 싶다.


단언컨대, 종현은 아이돌 계의 ‘옥’이다. 옥이라고 하면 뭔가 좀 허전하니까, 드물게 나타나는 빛나는 재능이라고 바꿔 말해보자. 샤이니 시절부터 조금씩 곡 작업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 젊은 뮤지션은 솔로 활동을 통해 자신이 지닌 음악적인 역량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단 샤이니의 멤버로서 종현은 ‘욕’, ‘줄리엣’ 등에서 작사를 하면서 자기 음악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드러냈던 바 있다. 두 곡 모두 시원한 속도감과 파워 있는 리듬이 공존하는, 전형적인 샤이니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종현의 작사 비중이 한결 높아진 것은 3집 ‘The misconceptions of us’부터였다. 이 음반에서 다수의 작사를 맡은 것만 봐도 그가 곧 솔로로 데뷔할 것임은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였을 것이다.[각주:5] 과연, 예상대로 그의 지휘 아래 등장한 첫 번째 솔로 ‘Base’(2015)는 인상적인 순간들을 다수 포착하고 있는 미니 앨범이었다. 무엇보다 샤이니의 강점인 속도와 파워가 이상적으로 동거하고 있으면서도 훨씬 더 탄력적인 리듬 메이킹이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첫 곡 ‘Deja-Boo’와 이어지는 ‘Crazy’가 대표적이다. 적어도 앨범의 이 초반부에서 종현은 그 어떤 순간에도 감정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뜨거운 열정보다는 차가운 긴장감이 곡 전체를 흐르고, 이를 통해 곡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라는, 전체적인 주제에 더없이 맞춤한 사운드로 듣는 이들을 설득해낸다. 뭐랄까. 이 곡 외에 전체를 쭉 감상해보면, 듣는 이들을 기분 좋게 압도하는 듯한 인상의 앨범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종현은 같은 해에 공개한 소품집 ‘이야기 Op.1’에서 방향을 달리했다. 강렬한 일렉트로닉이나 힙합이 아닌, 다소는 어쿠스틱한 감성을 심플한 편곡을 통해 들려준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보컬 능력까지 극대화해 표출한 종현은 이제 더 ‘먼’ 미래를 그리고 있다.



형식적으로 작사, 작곡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홍보 문구에 이 사실을 큼지막한 폰트로 자랑하듯 박아 넣는 것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작업이다. 기실 기존의 수많은 아이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음악력이 성장했음을 강조하려 했지만, 대개는 그리 성공적이질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큰 폭으로 성장한다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 까닭이다. 결국 문제는 이걸 ‘잘’ 해내느냐에 있는 것이고 보면, 글쎄, 종현만한 케이스를 한국 아이돌 신에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점점 더 예외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일보: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1. 종현이 푸른밤을 시작한 2014년 2월 3일부터 2015년 4월 24일까지 매일 코너 <음악이 머문 자리들>을 집필. [본문으로]
  2. 2014년 6월 3일 <더 라디오>의 「100분 17분 토론 - 긴급점검 더 라디오 이대로 괜찮은가」 편에서 시민논객으로 전화 연결. 2014년 6월 18일, 2014년 7월 9일, 2015년 2월 4일에는 <사려 깊은 오빠씨>의 일일 게스트로 출연. [본문으로]
  3. 종현 “‘순’타기 오‘퐈’ 줄여서 순퐈라고 부르시겠다고 어떤 분께서(웃음).”
    배순탁 (폭소)
    종현 “순퐈라고 부르신다고(웃음).”
    2014년 7월 9일 푸른밤 [본문으로]
  4. 배순탁 “「솔로 고1 남학생인데요, 위염에 걸려서 2일째 고생 중입니다. 위에 좋은 음악 좀 알려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종현 “되게 어려운(웃음). 솔로인데, 고1인데, 갑자기 위에 좋은 음악!”
    배순탁 “네.”
    종현 “뭘까요?”
    배순탁 “이야, 이거는…… 글쎄요.”
    종현 “음악 작가님, 술술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요? 위에 좋은 음악. 이게 나오면 이제 안구에 좋은 음악(웃음), 대장, 관절……”
    배순탁 “지금 위가 좀, 뭐랄까 전체적으로 전체적으로 힘들어 하잖아요. 다시 젊어져야 되잖아요.”
    종현 “나 예상할 수 있어. We Are Young(웃음)!”
    배순탁 (폭소)
    종현 “맞혔다(웃음)! We Are Young! 딱 떠올랐어(웃음). 혼자 '위가… 위가…' 할 때 '설마 We Are Young 아니겠지 ?ㅅ?' 했는데(웃음), 위(胃) Are Young.”
    배순탁 “네(웃음).”
    종현 “솔로 고1에게.”
    배순탁 “네. 죄송합니다(웃음).”
    종현 “Fun.의 We Are Young 추천해 주신 거네요(웃음). 재밌습니다.”
    배순탁 “네. 젊어지는 위를 위해서(웃음).”
    (…)
    배순탁 “「아까 위에 좋은 노래 추천해 주셨죠? 전 쌍꺼풀 수술 했는데 부기 진정시켜줄 노래」 ……아, 왜 그래(순무룩).”
    종현 “이거 어렵다(웃음). 자, 음악 작가님. 또 만났어요. We Are Young에 이어서 쌍꺼풀. 쌍꺼풀?”
    배순탁 “……이거 진짜 대박이다?”
    종현 “진짜요(웃음)? 기대합니다? 기대합니다(웃음)?”
    배순탁 “와, 나 천재 같아(흥분)! Earth, Wind & Fire의 Boogie Wonderland.”
    종현 “(폭소) 부기 Wonderland(웃음)?”
    배순탁 “나 천재 같아(폭소)!”
    종현 “천재다! 와, 저는 사실 순간 딱 생각했던 게 빈지노의 Boogie On & On.”
    배순탁 (폭소)
    종현 “생각했었는데 어쨌든 좋은 노래 한 번 더.”
    배순탁 “Boogie Wonderland~♪ Ha! Ha! 이거 이야, 딱이다.”
    종현 “부기가 있어도 원더랜드라는 거죠(웃음).”
    배순탁 “어우, 살았다.”
    종현 “음악 작가님이십니다, 역시. 최고예요. 노래 한 곡 듣고 침착하게 사연 다시 만나볼게요. 노래, 이 노래 듣죠.”
    배순탁 “Boogie Wonderland요?”
    종현 “네. 소개 한번.”
    배순탁 “Earth, Wind & Fire의 Boogie Wonderland입니다.”
    (…)
    종현 “「다들 이래서 순퐈 순퐈 하나 봐요. Boogie Wonderland라니, 대박이에요. 진짜.」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난리가 났네요. 허리에 좋은 노래, 라섹 수술 후에 시력 회복에 좋은 노래, 수족냉증……”
    배순탁 “허리에 좋은 노래는 생각나네요.”
    종현 “뭔데요?”
    배순탁 “뭐 Hurry Up 들어가는 거 하면 되지, 뭐(웃음).”
    종현 “Hurry Up(웃음). 오, 빠른데요? 그럼 수족냉증에 좋은 노래!”
    배순탁 “하지 마, 하지 마(웃음)!”
    종현 “수족냉증(웃음), 어때요? 다한증!”
    배순탁 “다한증(웃음)?”
    종현 “다한증 이런 건 없나요? 지금 고민하시는데 심지어(웃음)?”
    배순탁 “다음 번에 제가 나올 때 각종 질병에 특효가 있는 노래를 한번 싸가지고 오겠습니다.”
    종현 “알겠습니다(웃음).”
    2015년 2월 4일 푸른밤 [본문으로]
  5. 정준영 “그런데 샤이니 같은 경우는 이미 데뷔한 지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나이를 떠나서 인제 본인들의 음악을 할 때가 됐죠, 사실은.”
    배순탁 “샤이니의 리더(가 아니라 메인보컬) 종현 씨 같은 경우도 굉장히 음악적이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친구더라고요. 얘기를 나눠보니까.”
    정준영 “아, 그렇죠.”
    배순탁 “네. 그래 가지고 자기가 노래도 만들고 그런 걸 보면서 '아, 앞으로 정말 더 잘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혼자서만 해봤습니다.”
    2014년 8월 31일 심심타파
    배순탁 “국내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게 90년대였다. 가수가 직접 작곡, 작사에 참여한 곡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자기 음악을 직접 만들려는 아이돌이 많아진다는 건 긍정적인 면 같다. 단순히 기획사의 인형이 되고 싶지 않은 거다. 샤이니의 종현 같은 친구와도 대화해 보니 음악 욕심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더라.” 2015년 2월 ELLE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