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8×1485



종현이 말하다

종현과 말하다

종현을 말하다


종현을 만나기 전, 라디오를 통해 먼저 그를 알게 됐다. '그럴 수도 있다'는 표현을 몇 번씩 쓰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종현이 하는 말들의 말미는 둥글었는데, 자신을 드러내는 선에서 타인이 행여 다치지 않을까 끝을 구부린 말들이었다. 살갗처럼 붙어있는 그 말투가 그에겐 익숙해 보였다. 생각의 층과 겹이 촘촘하고 입체적인 사람인 것 같아 들을수록 그가 궁금해졌다. 마침내 종현과 마주앉았다.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대답을 들었다.


종현


종현 씨에겐 오늘 촬영을 함께한 스태프 모두가 새 얼굴이었어요. 섭외를 제가 했거든요. 의외였어요. 담당 스태프들과만 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화보의 대상이 나일 뿐 내가 주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체가 아니라고요?

네. 제 앨범 아니잖아요.


아….

농담이고, 화보는 시각적인 부분이라 제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요. 스태프들을 믿고 가는 편이에요. 담당 기자님이 좋은 분들을 잘 섭외해주셨겠죠.


새 앨범 소품집 <이야기 Op.1>이 나왔어요.

DJ를 맡고 있는 MBC 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에서 공개했던 노래들을 담았어요. 전 곡의 작사와 작곡에 참여해서인지 개인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 나온 것 같아요. 편곡 방향을 잡고, 트랙 리스트를 정한 후에 곡을 배치하고, 연주자분들이 녹음할 때에도 참관하고…. 어느 하나 제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어요.


앨범 활동에 대한 행보가 독특하네요. 방송 활동 대신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어요. 

음악적인 시도가 많은 앨범이라 프로모션도 참신하게 하고 싶었어요. 관객과 가까이 붙어 소통할 수 있는 버스킹은 제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공연 방식이에요. 팬들의 안전 문제를 고려하다 보니까 온전히 버스킹이라고 하기보단 좀 더 게릴라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긴 했지만요.


10월에는 솔로 콘서트 <THE STORY by JONGHYUN>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죠. 기획과 연출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원하는 방향이 있었나요?

소통이요. 그래서 공연의 이름도 스토리예요. <THE STORY by JONGHYUN>은 그 자체론 미완성이에요. 관객과 함께 완성해 나가야 하죠. 실제로 관객이 직접 참여해주셔야 마무리되는 조각들이 있어요. 


주고받는 공연이네요.

공연을 보신 분께서 “네 얘기를 들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시더군요. 전 제 얘기만이었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 모든 건 우리 이야기였어요.


앨범을 내곤 소설 <산하엽>을 내며 작가로도 데뷔했어요. 글 쓰는 건 어땠나요? 가사 쓰는 작업과는 다르던가요?

심하게 다르던데요? ‘소설을 써야지’란 생각보단 색다른 음악 감상법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포부가 거창했죠.


책을 통한 음악 감상이요?

<산하엽>엔 제가 작사한 12곡의 가사가 곳곳에 실려 있어요. 소설을 읽다가 가사가 나오면 해당 음악을 들어보세요. 이미 알던 노래도 새롭게 들릴 거예요. 


이야기를 읽다가 음악으로 들을 수도 있는 거군요. 이런 건 어쩌다 생각하게 됐어요?

음악에겐 멋진 힘이 있어요. 상상력을 이렇게, 팡 폭발하게끔 하고, ‘어떤 상황에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됐을까, 이후엔 어떻게 됐을까’를 떠올리게 해요. 조금 못된 마음일 수 있는데, 그 상상을 귀속해버리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노래를 만든 사람으로서 직접 노래의 앞뒤 상황을 알려주는 거죠. 소설 <산하엽>이.


무슨 내용이에요?

이별 얘기예요. 첫 작품은 자전적인 얘기가 많이 들어간다던데, 완성하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작가인 남주인공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기자인 여주인공은 일상의 굴레에서 지쳐 있지만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면에서 절 닮았어요. DJ는 외부 시선에서 바라본 사회적인 제 모습이에요. 마지막으로 여자 후배는 말 없이 위로하는 인물인데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된 캐릭터예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녹이려고 했어요. 


작가부터 평범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기준 자체가 되게 모호한 것 같아요. 제게도 분명 평범하게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힘들고, 그 힘든 걸 극복하려는 모습이 있거든요. 굴곡의 크기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느끼는 감정은 누구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영감을 찾는 건 음악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겠네요.

일상 속 발견을 자주 메모하는 편이에요. 어제 자 메모를 알려드리죠. (종현이 건넨 휴대전화엔 “밤은 술보다 위험하다. 밤은 너보다 위험하다.”[각주:1]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짧게 써놔요. 어느 날 밤에 떠올랐어요. 술을 마시면 감정에 기복이 생기잖아요.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근데 전 술 마실 때보다 밤을 맞을 때 그 기복이 더 심해지거든요. 이런 발견이나 감상을 비유나 시적으로 표현하고 음악으로 풀어내죠. 별거 아니에요.


그렇게 곡이 완성되는 거군요. 이번엔 라디오 얘길 해볼까요?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면 종현 씨가 라디오에 유독 애착을 보인단 사실을 알 테죠. 

재미있거든요.


그 시간을 다른 데 투자하면 돈을 더 벌지 않을까요?

하하. 돈은 딴 데서 충분하게 벌어요. 수학적인 걸 생각하고 하는 게 아녜요.


그럼 대신 뭘 얻어요?

교감이요. 친밀한 매체잖아요. 옆에서 얘기하는 것 같고. 모르는 분들도 만날 수 있어요. 아, 게스트가 아니라 청취자를 얘기하는 거예요. 두 시간이 통으로 주어지는 덕에 소소하거나 복잡 미묘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어요.


사연은 얼마나 와요?

매일 적게는 400통에서 많으면 2000통까지 와요.


다 읽진 못하겠네요. 작가가 선별한 사연을 읽게 되나요?

아뇨. 읽어요. 전부 다. 라디오 부스 안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광고 나갈 때에도 사연을 읽어요. 그 정돈 다 볼 수 있는 양이에요.[각주:2]


주로 어떤 사연인가요?

시간대가 밤이어서 그런지 ‘지친다’, ‘힘들다’, ‘오늘 하루는 이랬다’ 같은 내용의 사연이 많이 와요.


지친단 얘기를 자꾸 들으면 본인도 지치게 되지 않아요?

전 페이스가 강한 사람이어서요. 그렇진 않아요.


종현 씨는 힘내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하더군요.[각주:3] 이 사람, 위로의 고수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위로하는 건 어디서 배워요?

그런 걸 어디에서 배워요, 하하. 제가 따뜻한 사람인가 보죠. 음… 진심으로 공감하고 걱정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좋은 디제이가 갖춰야 할 덕목이 있을까요?

어제 라디오에서 얘기했던 부분이기도 한데요. 거짓으로 기쁜 척하는 건 좋은 DJ의 자세가 아닌 것 같아요. 슬픈 땐 슬프다고, 힘들 땐 힘들다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각주:4] 그게 멋진 연예인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DJ는 청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라 그들이 속마음을 내보이는 만큼 저도 숨김이 없어야 해요. 그래야 비겁하지 않겠죠.


쉴 땐 뭘 해요?

쉬지 못했어요. 쉬고 싶지도 않고요. 일하는 걸 좋아하는, 아니 일해야 한단 강박이 있는 사람이어서요. 가만히 있으면 쓸모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쉬지 못하는 사람도 있군요.

가끔 ‘난 왜 이렇게 못 쉴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사람마다 다른가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진 잘 모르겠어요.


모순이네요. ‘하루쯤 모두 제쳐두고 쉬어도 돼’라고 노래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해주는 얘기죠. ‘넌 그래도 돼. 난 안 되지만.’ 뭐 그런 느낌? 위로하는 노래를 많이 쓰긴 했어요. 저한테 하는 얘긴 아니었어요.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면요?

질문보단… 솔직해지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해요. 아직 솔직하지 못해서요. 근데 솔직해지고 싶어요. 치장하지 않고 싶고요. 아직 무리인 것 같지만… 언젠간 되겠죠?


솔직해서 도리어 상처를 받거나 주게 될지도 몰라요.

상처를 주고받는 것에 따른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마저도 성장의 증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해지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꿈꾸는 청년의 모습을 띠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어떤 청년의 모습이요?

사회에 이바지하는 청년….


밝은 청년이네요.

저 염세주의자예요. 몽상가죠. 근데 우린 사실 몽상가가 많이 필요해요.


몽상가란 사실엔 동의해요. 그런데 염세주의라… 왜요? 많이 가진 사람이잖아요. 사랑도 많이 받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염세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세계나 인생을 비참하다고 보고 환멸을 느껴 놓아버리고 사는 걸 뜻한대요. 전 거기까진 아니고…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도 알아야 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왜 그렇게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정의가 부정될 때 제 자신도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요. 나 하나로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방향을 잡고 옳은 쪽으로 나아가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종현 씨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누구나 평등한 사회, 그래서 평화로운 세계요.


ⓒEsquire: 포토 김재훈, 진행 강민지, 스타일리스트 최경원(Choi Kyungwon), 헤어 강현진(Kang Hyunjin), 메이크업 안성희(Ahn Sunghee), 어시스턴트 최승완(Choi Seungwan)

  1. “「요새 하루에 딱 한 문장 쓸 수 있는 다이어리를 쓰는데 이 한 문장이 은근히 어렵네요. 쫑디의 오늘 하루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뭐라고 하실 거예요?」라고 보내주셨습니다. 아직은 저의 하루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니까 지금 하기에는 좀 그렇고요, 며칠 전에 제가 그런 걸 썼었어요. 저는 글 쓰는 거나 그런 걸 즐기는 편이어서 잠들기 전 밤에 썼던 건데, 그 문장은 '밤은 너보다 위험하다'였거든요. 그 문장을 시작으로 이제 쭉 글을 썼었는데 '밤은 너보다 위험하다. 밤은 술보다 위험하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밤이 돼서 감성적으로 깊어지고 그리고 너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내가 슬퍼지고 그런 것들 ― 밤이기 때문에 나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만나볼 수 있다 ― 그래서 어찌 보면 위험하다라는 의미로 '나에게 가장 큰 건 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밤이구나' 이런 이야기를 썼던 글이었는데, 저는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하는 편이에요. 며칠 전이죠? 한 3~4일 전이었던 것 같은데요? 3~4일 전에 저는 하루를 '밤은 너보다 위험하다'라고 정리를 한 적이 있네요(웃음).” 2015년 10월 21일 푸른밤 [본문으로]
  2. “「쫑디, 잡지에 인터뷰한 거 잘 읽었어요. 게시판, 문자 다 본다고 하기에 소개가 안 되어도 좋으니 저도 쫑디에게 위로 한마디 하려고 보내봐요. 요즘 많이 바쁘고 힘들 텐데 씩씩한 모습 보여줘서 항상 고마워요.」라고 보내주셨습니다. 아이고, 그거 읽으셨구나? 신기주 기자님이 하시는, 신기주 기자님의 그 ○○콰이어 잡지(웃음). 감사합니다. 그래요. 재밌었어요. 인터뷰하면서 기자님 얘기도 되게 많이 했는데 좀 많이 나갔나 모르겠네? 어쨌든, 좋았고요. 이 라디오라는 게 좋은 매체죠. 정말, 너무너무. 사람마다 하면서 즐거운 일이 있잖아요. 해야 하는 일과 즐거운 일이 있는데, 라디오는 저한테 되게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한테 필요한 일. 내가 필요한 일이라기보다 저한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2015년 11월 4일 푸른밤 [본문으로]
  3. 「(…전략…) 그 어떤 위로에도 힘을 낼 수 없는 오늘이다.」라는 사연에 내일쯤을 써서 답하며 했던 코멘트들. “최면 걸듯이 '힘내' '힘내' 이런 말보다 '지금은 좀 힘들어 하고 우울해 하고 그런 다음에 정말 마음이 내킬 때 다시 돌아와' 이런 말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 곡은 공개한 날 이야기를 드렸던 것처럼 '힘들어, 힘들어.' 그럴 때 '야, 힘내.' 이 말보다는 차라리 '힘들 때는 좀 쉬고, 굳이 오늘 힘 안 내도 돼. 내일쯤 힘내고 그리고 네가 한 달 쯤 우울하고 힘들더라도 나는 옆에서 묵묵히 이 자리에 있을 테니까 언제든 너 기분 내킬 때, 힘날 때 돌아와서 나한테 이야기해 주면 돼.'라는 가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우리 가족분들에게 항상 '힘내요', '힘내십시오. 잘될 거예요.'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죄송한 기분이 있어요. 그래서 가끔은 그 '힘냄' 그리고 씩씩함을 강요하지 않는 DJ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 마음이 노래로 표현된 건 아닐까 싶습니다.” [본문으로]
  4. “「오늘 쫑디 지쳐 보여요. 쫑디가 제 하루의 끝을 항상 위로해 줬는데 저는 지금 이런 쫑디를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는 걸까요?」라고 보내주셨습니다. 이런 사연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사실 여러분을 위로하면서 '위로해야지! 위로하는 입장이야. 위로만 하는 자리야!'라고 생각하고 앉아 있지 않거든요. 저도 위로를 받고 있는 시간이니까 ―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한쪽에게만 에너지를 주지는 않죠 ― 저도 지금 에너지를 여러분께 많이 받고 있으니까요. 그냥 듣고 계시는 것만으로, 이렇게 문자를 보내주시는 것은 더더욱 크게 저에게 힘을 주고 계신 거예요. 제가 항상 '저 오늘 기분이 어때요', '저 오늘 기분이 어때요'라고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이유들도 그런 것 같아요. 두 시간이란 시간 동안 우리가 함께하는데 그동안 제가 힘들고 지치고 안 좋은 감정이 든다고 그걸 숨기고 방송 진행을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내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 감정에 대해서 여러분이 피드백을 해주시는 걸 또 내가 느끼고 그러는 게 ― 우리가 같이 만들어나가는 ― 그게 진짜 좋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DJ를 하려고 해요, 앞으로도.” 2015년 10월 6일 푸른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