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종현은 전주를 들으며 숨을 가다듬기보다, 첫 박이 떨어지기 무섭게 목소리를 밀어붙인다. 편곡을 한 디즈는 그렇게 빈틈없는 보컬 사이를 비집고 악기를 밀어 넣으며,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소리를 더욱 두껍게 쌓는다. 네오 솔이라는 팔레트 위에 충분한 자원을 양보 없이 쓴 ‘팝’을 듣는 즐거움.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라디오 DJ, 그리고 소설집 <산하엽 : 흘러간, 놓아준 것들>을 발간한 ‘쓰는 남자’ 종현. 그만의 세상에 아주 잠깐 들어가본 후 적어본 쇼트 스토리.
비온 다음 날이었다. 몸에 걸친 외투의 두께가 전날에 비해 곱절로 부풀어 오를 만큼 스산한 물기를 머금었다. 누군가를 대기 현상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날은 딱 ‘종현’스러운 날씨에 가까웠다. 이런 날을 좋아한다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조금 우울감이 있는 짙은 파란색의 날씨”
대낮에도 한밤처럼 어둑한 지하 3층 스튜디오 안으로 호리호리한 남자가 베트멍 후디를 푹 뒤집어쓴 채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작은 체구를 뒤덮고 있던 검은 옷을 걷어젖히면 조막만 한 얼굴과 실루엣만으로는 예측 불가한 다부진 팔 근육이 드러난다. 곧 링에 오를 권투선수 같은 태세. 그가 한 달 뒤 오를 곳은 무대다. 12월 서울(3,4일)과 부산(17,18일)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얼마 전 그의 트위터엔 “15세 공연이에요. 왜.그.럴.까.”라는, 묘한 궁금증을 품게 하는 짧은 글이 올라왔다. 그 멘션 바로 위엔 “콘서트 영상 촬영 전부 종료! 퍼포먼스 준비를 더 알차게”라며 근육질의 상반신 사진을 첨부했다. “체지방은 빠지고 몸무게는 예전보다 늘었어요. 운동을 열심히 해서 텐션이 한가득 올라온 상태랄까요?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분들도 저처럼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로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이럴 수가’라고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웃음)” 판타지적인 캐릭터, 화려한 무대 장치, 섹슈얼한 요소 등 예측 불가한 일들이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종현은 자타공인 워커홀릭이다. 촬영 당일의 스케줄을 속사포로 읊어보자면 전날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촬영장으로 바로 날아왔고, 몇 시간 못 잔 상태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일곱 벌의 의상과 밀착되어 ‘포즈 왕자’라는 별명과 함께 스태프들의 박수세례를 받았다. 사진가가 촬영 BGM으로 선곡한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흥얼거리거나 리듬 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러다가도 정적 속에 놓인 영상 카메라 앞에서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할 때는 수줍은 소년처럼 입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뭐지 이 남자? “무대 위에서만 공격적이고 강렬한 캐릭터가 뚜렷하게 나오는 편이고 일상생활에서는 훨씬 더 정적으로 살아요. 극과 극인 것 같아요. 워커홀릭처럼 파고드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반면에 제 안에는 염세적인 에너지도 있어요. 하루에도 그 두 모습이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전자의 모습이 불꽃처럼 잠깐 발현되는 것이라면 후자인 고요하고 정적인 시간은 그에게 훨씬 길고 중요한 듯하다. 그에겐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니까. “기린이 왜 기린인지 아세요?” 삼십 평생 내 이름 석 자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지 않은 나는 “목이 길어서?”라는 주입식 대답밖엔 할 수 없었다.(정답은 우리가 아는 그 기린은 전설 속에 존재하던 또 다른 동물 기린을 닮아 기린이 된 것이란다.) 당분간 맥주 캔에 그려진 그 전설의 동물을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다.[각주:1] “저 이런 거 너무 좋아해요.(웃음) 어떤 단어가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궁금증이 많아요. 이름이라는 게 사람들 간의 약속이랑 같은 거잖아요? 단어의 근본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종현이란 존재는 어디서 출발해 지금의 이름이 되었을까?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라디오 DJ, 그리고 소설집 <산하엽 : 흘러간, 놓아준 것들>을 발간한 ‘쓰는 남자’ 종현. 소신에 의해 고등학교를 과감히 그만두고 진로를 일찌감치 스스로 발견하여 음악학교에 진학했으며 샤이니의 멤버로서 그리고 종현이란 독립적 뮤지션으로 활동해온 지금까지의 행보엔 ‘쓰는 행위’가 있어왔다. 종현은 스토리텔링이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처럼 보였다. 제목 짓기━작사━작곡 순으로 이뤄지는 곡 작업은 주로 휴대폰의 메모장에서 처음 일어난다. 거기에 가장 최근에 뭘 적었냐는 질문에 “지금 한번 볼까요?”라며 버튼을 누르더니 언젠가 노래로 들을 수 있을지 모를 가사를 담담하게 읽어주었다. “‘씀’이라는 앱이 있어요. 매일 매일 글감을 하나씩 주는데 거기에 맞춰 글을 써서 올리면 사람들끼리 공유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잠꼬대, 헛수고처럼 단어와 문장이 랜덤으로 던져져요. 요즘 여기서 어떤 컨셉트를 잡고 계속 쓰고 있는 글이 있어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어 항상 그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거죠.” 그에게 곡을 쓸 수 있게끔 영감을 주는 건 텍스트뿐만 아니라 소리의 힘도 있다. 김예림, 아이유, 손담비, 이하이 등 평소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곡 작업과 함께 때때로 프로듀서의 역할도 겸했으며 이에 대해 대중과 평단이란 양날로부터 호평을 끌어냈다. 요즘 종현이 즐겨 듣는 음악은 우효라는 인디 뮤지션. “읽는 것과 듣는 것을 동시에 못해요. 음악이 귀에 들어오면 일단 따라 부르다가 가사 내용이나 제목을 집중해서 들어요. 시각과 청각은 공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음악을 들을 때 어떤 향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그래서 향초를 피우기도 하고요. 머스크랑 우드 향을 좋아해요. 다른 건 민감하지 않은데 향에는 좀 예민해요. 어떤 공간이나 사람에 대한 향도 잘 기억하고.” 에르메스 ‘보야지’ 향수만 7년 가까이 써오고 있을 정도로 향에 대한 애착이 확실하다. 보디로션, 오일, 미스트, 헤어 퍼퓸을 몸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이유 역시 “제가 좋아하는 향이 나야 하거든요.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내리면 제가 없어도 사람들이 다 알아요. ‘종현이 왔다 갔네?’(웃음)” 종현은 지금까지 작업해온 자신의 솔로 앨범을 어떤 향과 매칭했을까? “소품집 앨범은 우드 향, 미니 앨범은 빨간색을 품은 야릇한 향초를 피워두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종현과의 대화가 녹음된 파일을 종이에 타이핑하는 내내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사실 지난 2014년 겨울부터, 자정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 시계초침 소리처럼 들어온 음성이다. 내게 라디오는 습관과도 같다. 무의식적이고 반복된다. 버스 창가나 방 안에서 멍한 채로 하루의 끝을 그의 음성으로 인지해왔던 것 같다. 얼마 전 그가 DJ로 자리를 지켜온 MBC 라디오 <푸른밤 종현입니다>가 천일을 맞이했다. 그날 방송이 끝나갈 무렵 종현은 꾸역꾸역 참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행복하고 따뜻했다는 청취자들의 짧은 사연 사이로 종현이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 기념일을 잘 챙기지 못해요. 그날도 ‘와, 시간 되게 빠르구나, 그래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했네.’ 정도라고 담담하게 생각했는데 청취자분들이 보내주신 이벤트와 사연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일상과 저의 일상 사이에 어떤 우연한 교집합이 생기면서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운명적인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운명을 좀 믿는 편이거든요.(웃음) 어떻게 보면 제가 보통 사람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의 사연을 통해 배우는 부분이 컸어요. 제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을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라디오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변화였어요.” 종현에게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 것, 두 번째가 자신의 첫 앨범을 만든 것이었다면 세 번째 인생의 전환점은 “라디오를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청취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직접 곡을 만든 결과물을 모은 앨범인 종현 소품집 <이야기 Op.1>가 그의 필모그래피에 남았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음반사에 있어 유일무이한 시도이지 않았을까?
2016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 종현은 라스트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든 상태예요. 콘서트가 끝나면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제 몸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 일을 좀 줄여야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1부터 10 가운데 요즘의 상태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 것 같냐고 묻자 대뜸 만화 <나루토>의 록리라는 캐릭터 이야기를 꺼낸다. “본인의 몸에 있는 차크라를 개방하면서 더 세지는 캐릭터거든요. 아마 몸에 8개의 문이 있었을 텐데 그걸 열면 열수록 더욱 강해져요. 그런데 항상 비기에는 독이 따르기 마련이죠. 록리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문을 몇 개 이상 개방하면 며칠간 움직일 수 없거나 혼수 상태에 빠져요. 지금 제가 딱 그런 상태에 도달해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임헌일 “「‘왜’라는 말, 요즘 제가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이제 입이 막 트인 우리 아들이 저만 보면 하는 말이거든요. ‘엄마 왜?’ 며칠 전에는 기린 그림을 보면서 ‘엄마, 뭐야?’ 하고 묻길래 기린이라고 알려줬더니 왜 기린이냐고 서른 번 넘게 물어봐서 매번 다른 대답 지어내느라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종현 “이럴 때 ― 왜라는 말버릇이 붙은 친구들과 함께했을 때 ― 자아성찰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임헌일 “저도 사실 오늘 이 주제 딱 듣고 요게 생각이 났어요. 이제 막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들.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의 아이들 있잖아요, 모든 것에 ‘왜’를 다는 친구들 있잖아요.” 적재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런 질문들이 당연한데, 뭔가 그냥 저건 저거대로 ― 예를 들어 ‘기린은 그냥 기린이니까’ 이렇게 하고 ― 넘어가는 거지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한 거잖아요.” 종현 “그렇죠. 우리가 사실 기린이라는 이름 자체가 왜 지어졌고, 그 이름이 왜 기린이고, 언제 처음 기린이 나타났고(웃음), 누가 발견했고, 이런 걸 모르게 되는 거죠. 백과사전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궁금증이 되게 많아서 백과사전을 진짜 많이 보고, 지금도 휴대폰으로 검색 진짜 많이 하고 어플 중에 백과 어플이 되게 많아요(웃음). 그런 거 검색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종현 “오늘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별의별 얘기를 다 했어요(웃음). 이사부터 적금, 사랑, 뭐 있었나요? 친구와의 부딪침.” 임헌일 “수건 이야기도 있었고요(웃음).” 종현 “기린은 왜 기린인가, 이런 이야기.” 임헌일 “그러니까요(웃음).” 종현 “지금 많은 분들이 기린 검색하고 계세요. 기린이 왜 기린인지, 이 말이 나오면서 다들 궁금해지십니다.” 임헌일 “길어서 기린인가?” 종현 “기린? 기린은 길어서 기린인가!” 임헌일 “모르겠네요.” 종현 “검색을 해볼 걸 그랬어요. 궁금해 죽겠어요. 빨리 두 분 보내드리고 기린 검색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2016년 11월 7일 푸른밤 [본문으로]
THE MAGAZINE FOR THE WORLD, ANIMALS & OURSELVES CELEBRATES THE MEANINGFUL 7TH YEAR.
2016 ‘Covers’
Covers from November 2015 to October 2016
표지
표지는 그 잡지의 성격과 추구하는 방향,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페이지입니다. 항상 가장 좋은 표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는 오보이!의 표지들. 다양하고 인상적인 오보이!의 표지 이미지들과 표지 선정 과정에 얽힌 짧은 얘기들. 지난 1년간 표지를 장식했던 인물과 이미지들, 풍경들에 대한 설명과 뒷얘기를 확인하세요.
붉은 색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우연하게도 두 달 연속 강렬한 붉은 색상이 표지를 물들였습니다. 인상적인 핑크 컬러의 머리를 하고 있던 샤이니 종현이 빨간 색의 의상을 입고 빨간 배경지 앞에서 찍은 사진을 표지로 선정하는 데는 일말의 고민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붉은 색의 사진과 파란 로고, 노란 텍스트로 어느 때보다도 매력적이고 강렬한 표지가 완성됐습니다.
2016 ‘Editorials’
Editorials & Interviews from November 2015 to October 2016
화보와 인터뷰
올해에도 많은 뮤지션들과 배우, 유명인들이 오보이!의 스튜디오를 찾아 멋진 화보를 만들었습니다. 멋진 분위기의 화보와 인터뷰는 오보이에 대해서 모르던 사람들이 잡지에 대해서 알게 되고 오보이가 얘기하는 환경과 동물복지에 대한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매개가 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환경과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오보이!를 위해 지난 1년 동안 스튜디오를 찾아 카메라 앞에 선 수많은 스타들과 그들의 가장 멋진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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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의 온라인 소통에도 애쓰는 오보이는 작년에 개설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독자들과 긴밀한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1년 동안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던 이미지들 중에서.